호스피스 병동 다섯 중환자사연에 깃든 허위의식 폭로
죽음의 문턱에서 여전히 삶에 집착하는 호스피스 중환자들을 통해 한국인들의 현세중심주의를 비판한 연극 ‘인어도시’. 사진 제공 두산아트센터
대본 ★★★ 연출 ★★★ 연기 ★★★☆
연극 ‘인어도시’(작·연출 고선웅)는 두산아트센터가 기획한 ‘인인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인인인 시리즈는 한중일 3국 사람들의 절실한 당대 고민을 연극을 통해 살펴보는 기획이다. 첫 번째 ‘코뿔소의 사랑’(랴오이메이 작·박정희 연출)은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중국이 사랑의 불모지가 되어간다는 중국인의 상실감을 형상화했다. 두 번째 ‘잠 못 드는 밤은 없다’(히라타 오리자 작·박근형 연출)는 일본 사회에 대한 염증으로 자신들의 나라 밖에서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본인들의 서글픈 초상을 담았다. 그 마지막 작품인 ‘인어도시’가 포착한 한국인의 절실한 고민은 무엇일까. 뜻밖에도 그것은 ‘죽음’이다.
무대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중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병동이다. 다섯 명의 환자와 그들을 돌보는 한 명의 간호사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말다툼을 벌인다. 이들의 공통주제는 인근 저수지로 낚시를 하러 갔다 온 정 씨(정인겸)가 봤다는 아구다. 짠물에 사는 아구가 어떻게 민물에 나타난단 말인가. 하지만 아구에게 물린 정 씨는 아구가 병실 사람들을 한 명씩 잡아먹을 것이라는 말을 남긴 뒤 깊은 잠에 빠진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흉측한 아구가 아니라 아름다운 인어(이혜원)다. 그러나 인어야말로 그들의 허세와 허위를 폭로하는 잔인한 괴물임이 드러난다. “안전하다고 결론 맺기 전까지 재고 또 재는 불안, 조직화된 피해망상증, 솔직하지 않아서 생기는 그 비밀스러움, 거기서 출발한 강박증이 너희를 공포로 몰아넣었잖아? 모른 척하지 말구. 맞닥뜨려서 인정하면 될 걸 왜 그러지 않는 건데?”
인어는 죽음 앞에서도 현실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려는 호스피스 중환자들의 영혼을 휘저으며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는 한국인의 현세중심주의를 매섭게 질타한다. 죽음에 대한 거부감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한국적 심성이 인어의 혀끝에서 발가벗겨진다.
맞는 말이지만 어딘가 불편하다. 고선웅 씨는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부제를 통해 그 불편함을 비켜가려 한다. 하지만 불편함은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 앞에 선 연약한 영혼들이 절대적 타자(인어)에 의해 발가벗겨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그들이 “선과 악, 좋고 싫은 것, 잘하고 못한 거, 그런 것들 다 무시하고, 그대로를, 온전한 나를 인정해”야 한다면 그것은 인어의 독기어린 장광설에 설복당하는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간절한 회심(回心)으로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코뿔소의 사랑’이 한국의 낭만적 과거를 되돌아보게 한다면 ‘잠 못 드는 밤은 없다’는 한국의 음울한 미래를 환기한다. 그런 맥락에서 현재 한국의 문제를 현세중심주의로 포착하고 이를 죽음에 대한 자세로 풀어낸 작업은 의미심장하다. 다양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한 점이나 인어를 ‘죽음의 사자’로 비틀어 형상화한 재치는 분명 돋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비현실적 존재에 기대어 극을 종결짓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기계장치로 등장하는 신)’식으로 발현시킨 점에 대해선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i: 3만 원. 7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 111. 02-708-50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