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트라비아타’ 3막. 파리 사교계 여왕 플로라의 집에서 열린 연회에서 여성 점쟁이들이 춤을 추고 있다. 김선희발레단이 출연했다. 사진 제공 서울오페라앙상블
연출 ★★★☆ 관현악·합창 ★★★★ 주요배역 가창 ★★★☆
사회가 성적 욕망의 배출구를 마련해 두고 그 도덕적 짐을 약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인간의 오래된 관습이다. 오페라 연출가 장수동 씨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그 같은 부조리를 고발함으로써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작품으로 탄생했다고 설명한다. 19세기 부르주아 사회를 뛰어넘어 이 작품을 ‘우리 시대’ 오페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그가 생각하는 이유다.
장 씨가 이끄는 서울오페라앙상블이 25∼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했다. 이 작품을 동시대화하겠다는 취지는 성공했을까. 시대의 간격이 주는 거리감을 상당부분 없앴다는 점에서는 성공이었다. 무대장치와 복식, 소품에 21세기의 색깔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시대의 양식을 동시에 등장시켜 시대감을 탈색시키는 방식이었다. 19세기 양식의 야회복과 20세기 중반의 스포츠카, 21세기의 모던발레가 3막 무대에 동시에 등장해 주인공 비올레타의 비극이 ‘어느 시대에나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일깨웠다. 1막, 3막 전주곡이 흐르는 동안 비올레타가 가림막 뒤에서 ‘갈라진 길’을 걷도록 한 아이디어는 ‘길 잃은 여인’을 뜻하는 작품 제목에 비추어 설득력이 컸다.
27일 공연에서는 주요 배역진 가운데 제르몽 역을 맡은 러시아 바리톤 그리고리 오시포프 씨의 완숙한 노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음성의 결부터 제르몽이 나타내는 준엄하면서도 자애로운 아버지상에 맞춰 입힌 듯이 들어맞았다. 상대 배역이나 관현악의 일치감을 끌어내는 능력도 뛰어났다. 비올레타 역의 양기영 씨는 투명하고 청초한 음색의 질감으로 호소력 있는 비올레타를 펼쳐냈다. 1막 마지막 부분의 콜로라투라도 완숙했으나 ‘dee volare(날아가네)’의 상승음형에서는 관현악과 정밀하게 맞아들지 않았다. 알프레도 역의 하만택 씨는 이날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 듯했다. 목소리가 트이지 않아 관현악의 총주 부분에서 종종 소리가 묻혔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