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선 끙끙… 매장선 호통… 한때 ‘투잡 증후군’
낮에는 회사, 밤에는 매장. ‘투잡’에 도전해 주점 ‘치어스’ 옥수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현우 씨(왼쪽)가 매장 일을 도와주는 친누나(가운데)와 함께 아르바이트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제공 치어스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달 2일부터 10일까지 직장인 16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6.3%가 ‘본업 외에 투잡을 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3년 전(55.1%)보다 31.2%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사람인에 따르면 실제로 투잡을 하고 있는 직장인도 응답자 열 명 중 한 명꼴(9.8%)로 조사됐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이현우 씨(44)도 미래를 위해 투잡에 도전한 창업자다.
“투잡의 조건은 먼저 회사 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이 씨는 “창업한다는 사실을 회사에서도 알았지만 회사 일에 지장을 주지 않아 문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후 5시면 업무가 끝나기 때문에 투잡이 가능했다.
하지만 미처 예상하지 못한 문제로 이 씨의 창업은 순탄하지 않았다.》
○ 직원과의 불화로 매장 안정 못 시켜 고생
이 씨는 2008년 8월 창업에 도전했다. 그는 “평소 퇴근 뒤 주점을 자주 찾았는데 단골가게에 늘 손님이 붐비는 것을 보고 도전의욕이 솟았다”며 “경험은 없었지만 믿을 수 있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지원을 받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주점 창업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정보를 모았다. 업종정보를 얻기 위해 프랜차이즈 본사 담당자는 물론이고 단골주점 사장과도 대화를 나눴다. 주말에는 상권을 조사했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 옥수역 인근 PC방이 있던 자리가 마음에 들었다. 건물 2층에 있는 103m²(약 31평) 규모의 매장이었다.
치어스 서울 옥수점의 투자비는 점포 보증금 6000만 원을 포함해 1억6000만 원. 창업자금은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마련했다. 이 씨는 “투잡인 만큼 빨리 매장이 안정되기를 바랐다”며 “매출이 오르면 매니저를 뽑아 매장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도 매장은 안정되지 않았다.
스킨십 늘리고… 매뉴얼 만들고
초반 어려움 딛고 이젠 웃지요
가장 큰 문제는 직원의 잦은 교체에 있었다. 이 씨는 매장 청소나 장사 준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혼부터 냈다. “아르바이트생 2명을 고용하고 오후 7시가 되면 매장을 찾아 장사 준비와 청소 상태를 확인했어요. 그때 일이 잘돼 있지 않으면 잔소리로 일관했죠.” 다음 날이면 꾸지람을 들은 직원이 그만두는 일이 생겼다. 직원이 자주 바뀌었다. 그러자 업무에 익숙지 않은 직원이 주문하지 않은 메뉴를 서빙하는 등 서비스에 문제가 생겼다. 손님들의 불만이 커졌다. 유동인구도 생각보다 적었다. 그는 “홍보가 필요했지만 직장에서 관리 업무만 담당해 마케팅의 중요성은 잘 몰랐다”고 말했다.
두 가지 일을 하자 회사 생활에도 무리가 왔다. 오전 1시까지 매장에 있다 보니 피로감이 만만치 않았던 것. 업무 집중도가 떨어져 상사의 지적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주말에 가족여행을 자주 떠났었지만 매장을 운영하면서는 불가능했다. 가족관계도 소원해졌다.
○ 경험 있는 누나 도움 받아 다시 시작
돌파구가 필요했다. 매장 운영 경험이 있는 누나와 상의를 했다. 이 씨는 “누나가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매장에서 장사 준비와 청소상태를 체크했다”며 “가게를 나보다 잘 알기 때문에 누나와 이야기하며 매장 운영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상황이 나아졌다. 직원과의 대화법도 누나의 조언대로 바꿨다.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생에게는 호통을 치지 않았다. 업무를 조목조목 가르치며 타이르듯 얘기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전보다 이 씨를 잘 따랐다. 물론 아르바이트생의 이직을 아예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이 바뀔 때를 대비해 매뉴얼을 만들었다. 누나가 전담해 교육을 하기로 했다. 그러자 직원이 바뀌어도 하루 이틀이면 서비스의 질을 예전 수준처럼 맞출 수 있었다.
○ 고객 밀착 마케팅 펼쳐 성공
매장과 가까운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치니 효과가 높았다. 특히 ‘초등학생 생일잔치 장소 대여’는 반응이 좋았다. 평일 오후나 주말 초등학생들과 학부모가 모여 생일잔치를 열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한 것. 그는 “생일잔치를 열 때마다 매장을 방문하는 10여 명의 학부모 덕택에 입소문이 나 마케팅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씨는 매장에서 하루 95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여름에는 하루 110만 원 의 매출이 나온다. 장사가 잘 안 될 때 60만 원의 수입을 올리던 것과 비교하면 최대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초기 어려움을 딛고 안정적으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이 씨는 “장기적으로는 매니저 체계로 운영되는 330m²(약 100평) 규모의 대형 주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전문가 조언
‘투잡’ 창업자라면 꼭 명심
직장에 다니며 창업을 하는 ‘투잡’ 창업자들에게 가장 힘든 시기는 창업 초기다. 창업 초기에는 사업이 아직 안정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행착오도 많이 겪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재 이 씨는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매출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다. 하지만 자만하면 안 된다. 1년 전부터 안정적인 매출이 나오고 예전의 생활 리듬도 되찾고 있지만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 매장 서비스와 품질관리는 조금만 게을리 하면 지금 수준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매장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으면 금방 문제가 생긴다. 직접 나가지 않더라도 매장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기술이 발달돼 회사나 집에 있는 컴퓨터로도 매장의 매출이나 재고를 관리할 수 있다. 휴대전화와 연동되는 폐쇄회로(CC)TV 시스템을 활용하면 매장 운영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도 있다.
한편 손님이 적은 시간대의 매출을 올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해야 한다. 손님이 몰릴 때는 빈자리가 없어 고객을 더 받을 수 없지만 낮 시간이나 초저녁에는 손님이 없어 매장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생일잔치 이벤트를 꾸준히 진행하면서 연령층을 넓혀 주부나 어르신 또는 동호회 모임 등을 유치한다면 빈 시간대의 매출을 높일 수 있다. 이를 위해 주말 등 쉬는 날에는 이웃과 친분을 쌓는 데 공을 들일 필요가 있다.
이경희 한국창업전략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