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鄭총리 ‘책임지겠다’ 의미는“지난달 중순 MB와 만나 이미 사퇴의사 표명”鄭총리 주변 인사들은 “사퇴 속단하긴 이르다”
고개 숙인 ‘세종시 총리’ 정운찬 국무총리가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에서 세종시 수정법안 부결에 대해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한 뒤 퇴장하기에 앞서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양회성 기자
정 총리는 이날 자신의 거취에 대해 ‘사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해석도 엇갈린다.
‘지방선거 패배와 세종시 논란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선 완전히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여권 일각에선 이제 당·정·청 수뇌부를 전면 쇄신할 수 있는 여건이 완비됐다고 보고 있다. 정 총리가 세종시 문제를 계기로 사퇴해야 하며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방선거 이후 쇄신국면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본인도 명예롭게 퇴진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정 총리가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는 해석이다. 정무라인의 한 참모는 “정 총리가 사퇴하는 게 본인도 사는 길이다. 정 총리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 총리가 선거 참패 후 쇄신국면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당위론으로 이어진다.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직을 던진 만큼 정 총리도 사퇴함으로써 정부와 여당이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정 총리가 이 대통령이 3일 해외순방에서 돌아오면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반면 정 총리가 여전히 ‘진짜 한번 제대로 일해보고 싶다’는 의지를 접지 않았다는 분석도 많다. 정 총리 주변 인사들은 그가 그동안 청와대와 여권 일부의 견제 속에 손발이 묶인 채 10개월 가까이 국정을 끌어왔다고 평하고 있다.
정 총리 주변에서는 “정 총리는 ‘현직을 더 할 수 있지만 이런 구도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 총리가 이날 ‘현실정치의 벽’을 언급한 것도 중의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친박(친박근혜)계와 야당의 반대를 지적한 것이기도 하지만 본인에 대한 친이(친이명박)계 내부의 견제에 대한 비판의 뜻도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판단에 자신의 거취를 맡김과 동시에 유임이 가능하다면 이번 기회에 자신의 의지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달라는 뜻이 정 총리의 발언에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에선 정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과 미래를 위해서도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 대통령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미지수지만 정 총리의 거취는 향후 여권의 인적쇄신과 이 대통령의 집권후반기 국정 구상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