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시일 내에 IT동아 사이트의 카테고리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오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지난 2009년 6월 29일, 홍콩 Shaw Studio에서 열린 HP 행사는 이러한 고민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지금까지의 프린터는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PC 없이는 사용할 수 없는 ‘주변기기’였다. 하지만 이번에 HP에서 발표한 ‘이프린트(eprint)’ 기술과 이를 접목한 HP의 프린터들은 프린터 자체에서 출력이 가능한데다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과 연결해 글이나 사진 등을 출력할 수 있다. 과연 이런 프린터를 그냥 주변기기로 놔둘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홍콩에서 열린 HP 컨슈머 빅뱅 2010(Consumer Big Bang 2010) 행사를 꼼꼼히 살펴본 후 생각하기로 하자.
이메일 한 통으로 출력이 가능!
그리고 그녀의 바람은 HP가 마련한 이상한 나라(행사 무대)에서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PC와 연결된 선을 통해서 데이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출력하고자 하는 데이터를 인터넷을 통해 프린터로 보내면 된다. 이프린트 기술이 적용된 HP 프린터에는 1대에 1개의 이메일 주소가 할당되어 있어, 출력하고자 하는 콘텐츠를 프린터의 이메일로 보내면 프린터가 알아서 이를 출력하는 것이다. 이메일이므로 복잡한 프린터 설정이나 드라이버 설치도 필요 없으며,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기기라면 그 어떤 것에서라도 출력이 가능하다. 또한 이메일 본문만이 아니라 첨부 파일도 출력할 수 있으며, jpg, ppt, doc, pdf 형식을 지원한다(용량은 최대 5MB).
다른 장소에 있는 드림웍스의 대표가 간단한 인사말 이메일을 보내자, 몇 초 지나지 않아 행사장에 있는 프린터로 출력되었다.
이메일을 통해 출력이 가능하다는 것은 내 프린터가 아니라 다른 사람 프린터로도 데이터를 보낼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멀리 떨어져 살고 계시는 부모님께 손자의 사진을 보낸다거나, 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을 엽서 대신 친구에게 보낼 수도 있다. 또한 회사에서는 필요한 서류를 다른 회사 프린터로 직접 보내 마치 팩스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프린터에서 프린터로 바로 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 팩스와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린터를 ‘보호’ 모드로 설정해두면 미리 수락해둔 사람들에게서 받은 메일만 출력하게 되며, 보호 모드를 안 하고 그냥 모든 사람에게서 받은 메일이 출력되게 할 수도 있다.
이프린터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이 있다.
보호 모드가 아닐 때 스팸이나 바이러스 메일이 오면?
스팸이나 바이러스가 접근하기 어렵도록 이메일 주소는 14자의 영문/숫자로 이루어지며(물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바꿀 수는 있다), 사용자가 알려주지 않는 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그리고 받는 사람이 여러 명인 메일은 자동 출력되지 않게 되어 있기 때문에, 원치 않는 콘텐츠가 마구잡이로 출력될 확률은 낮다. 게다가 HP 클라우드 시스템 내에서도 스팸/바이러스 차단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그래도 스팸이 계속 출력된다면 이메일 주소를 다시 할당받을 수 있다고.
성장 가능성이 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최초 공개
HP는 이 이프린트 기술을 아시아태평양(이하 아태) 지역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왜냐하면 인터넷 이용 가정과 3G 기술이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이 바로 아태 지역이기 때문이다. HP는 조사를 통해 2013년 전 세계 인터넷 이용 가구는 약 7억여 가구가 될 것이며, 그중에서 약 50%가 아태 지역에 집중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스마트폰 역시 마찬가지. 10억여 개의 스마트폰 가운데 35%가 아태 지역에서 사용될 것이며, 점점 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2009/2010 스마트폰 시장동향, 카날리스(Canalys)).
아태 지역 인터넷/스마트폰 사용자 분석에 대해서는 HP의 이미징프린팅 그룹 존 솔로몬 부사장이 발표했다.
이프린트 제품이 자신의 힘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선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어야 하는 법. HP 아태 및 일본 지역 이미징 프린팅 그룹의 존 솔로몬(John Solomon) 부사장의 표현을 빌자면, “이제 시장과 소비자는 HP의 이프린트 기술과 제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이프린트 기술이 적용된 프린터는 위와 같이 이메일을 이용해 원하는 콘텐츠를 출력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또 하나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프린터에서 직접 웹에 접속하여 콘텐츠를 출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출시될 HP의 모든 잉크젯 프린터(99$ 이상의 제품)에는 스마트폰과 비슷한 형태의 터치스크린이 달려 있고, 터치스크린에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선택하면 해당 애플리케이션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바로 출력할 수 있다. 인터넷 뉴스, 웹페이지를 출력하는 것은 기본. 구글 캘린더, 스도쿠나 색칠공부 등 엔터테인먼트형 콘텐츠도 제공될 예정이라고 한다.
프린터 본체에 터치스크린이 달려 있어 직접 콘텐츠를 다운, 출력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애플리케이션들은 처음에는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들이 설치되어 있지만,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처럼 자신이 원하는 애플리케이션만 선택, 설치할 수 있다. 또한 HP의 발표에 따르면 이프린트 제품용 애플리케이션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될 예정이며, 나라별 특색에 맞춰 최적화된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프린트 기술의 시스템에 대한 설명은 HP 이미징 프린팅 그룹 수석 부사장인 비요메시 조시(Vyomesh Joshi) 씨가 맡았다.
드림웍스 애플리케이션 - 애니메이션 캐릭터 관련 콘텐츠
슈렉, 드래곤 길들이기, 마다가스카 등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이용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제공한다. 캐릭터 색칠공부, 3D 페이퍼 크래프트, 책갈피 출력 등 다양한 메뉴가 마련되어 있으며, 새로 개봉할 애니메이션의 예고편도 프린터의 터치스크린 화면에서 직접 볼 수 있다.
SK M&C 애플리케이션 - 오케이캐쉬백 쿠폰 서비스
오케이캐쉬백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쿠폰 중에 자신이 원하는 종류의 쿠폰만 선택 출력할 수 있는 서비스. 소비자층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기 때문에, 대상에 최적화된 광고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것이 SK M&C측의 설명이다.
오캐이캐쉬백 쿠폰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설명을 맡은 SK M&C의 진태준 본부장.
웨더뉴스 애플리케이션 - 전 세계 날씨 출력
전 세계의 날씨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웨더뉴스의 애플리케이션. 원하는 날짜, 기간, 장소의 날씨를 출력할 수 있으며, 출력물 한쪽에는 메모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미리 날씨를 알아본 후, 이에 맞는 스케줄을 정할 때 사용하면 요긴할 듯하다.
또한 뉴스 같은 콘텐츠들은 자신이 원하는 분야만 선택적으로 출력할 수 있으며, ‘매주 화요일’ 또는 ‘2일에 한번’ 등과 같은 식으로 스케줄링하여 출력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제품 출시 시기는 올 가을
1. HP 포토스마트 프리미엄 e-복합기: 무선으로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고 고급 출력 애플리케이션 전라인을 선택함으로써 이용자의 필요에 맞게 맞춤화할 수 있다. 4.3인치 터치스크린 탑재, 자동 양면 출력을 이용해 용지를 최대 50%까지 절약할 수 있다. 2010년 10월에 199$로 출시될 예정.
2. The HP 포토스마트 플러스 e-복합기: 3.5인치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전문 품질의 사진, 일반 문서, 독특한 출력물을 출력할 수 있다. 퀵폼, 인사 카드, HP 게임, 공예 및 뉴스와 같은 웹 콘텐츠를 PC 없이도 신속하게 출력할 수 있다. 2010년 10월에 149$로 출시될 예정.
3. The HP 포토스마트 무선 e-복합기: 전문 품질의 사진, 일반 문서, 웹 콘텐츠를 PC 없이도 즉석에서 출력할 수 있다. 이프린트 기술과 내장형 무선 기능, 개별 잉크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출력이 가능하다. 2010년 6월에 99$로 출시될 예정.
4. The HP 포토스마트 프리미엄 팩스 e-복합기: 자동 문서 공급기를 통해 팩스, 스캔, 복사를 간편하게 할 수 있으며 사진과 웹 콘텐츠도 손쉽게 출력할 수 있다. 유무선 네트워킹 등 연결 옵션을 제공한다. 2010년 9월에 299$로 출시될 예정.
기자의 눈으로 본 행사
이프린트 기술과 제품에 대해서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PC에서는 물론,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 다 볼 수 있는 콘텐츠를 굳이 출력해야 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모니터, 스크린에서 보는 것이 더 나은 콘텐츠가 있고, 출력을 하는 것이 더 나은 콘텐츠가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지난 몇 년 동안은 집에서 프린터를 사용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에 제과제빵에 관심이 생기면서 요리 레시피를 출력하기 위해 프린터를 장만하게 되었다. 아이폰이나 노트북으로도 레시피를 볼 수 있으나, 물 혹은 밀가루 묻은 손으로 조작하기가 영 껄끄러웠던 것이다. 이렇듯 출력하는 것이 ‘더 나은’ 콘텐츠는 요리 레시피 이외에도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프린터에는 쿠폰, 교육, 뉴스, 사진 등등 다양한 카테고리의 애플리케이션이 제공될 예정이다.
포인트는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PC나 스마트폰에서 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콘텐츠를 굳이 출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콘텐츠를 좀 더 쉽게 출력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뿐이다. 굳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엄마 손을 잡아야만 걸을 수 있었던 아이가 이제 조금씩 혼자 걷기 시작했다. 아직은 혼자 내버려두기 불안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혼자서 잘 돌아다니고 친구들도 만날 것이다. 이제 막 세상으로 걸음을 내딛는 아이를 혼자서 가면 안 된다고 가로막는 것보다는 그냥 아이의 걸음을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 이 글의 서두에 던졌던 프린터의 카테고리에 대해서 생각해보면서 긴 글을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그리고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은 프린터라는 주변기기를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이 프린터에만 국한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 현재 ‘프린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드는 것은 시기상조다. 상황이 바뀌어 주변기기를 더 이상 주변기기로 칭할 수 없게 된다면 카테고리를 바꾸는 게 옳을 것이다. IT동아에 ‘프린터’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과연 생길 것인가, 또한 생긴다면 언제 생길 것인가. 이에 대해서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글 / IT동아 박민영(biaret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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