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정 : 러시아 비로비드잔(13일)~캠핑(14일)~벨로그로스크(15일)
비로비드잔을 떠난 지 얼마 안돼 처음 맞이하는 오프로드 길이 나왔다.
처음엔 별 문제 없었지만 곧 이상조짐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태원 씨의 바이크 뒤가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 이내 뒤따라가던 일행의 바이크도 앞뒤가 동시에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태원 씨는 결국 그의 긴 다리를 이용해서 바이크를 세우는데 성공 했고 필자의 무거운 바이크는 드러눕고 말았다. 드디어 오프로드 첫 사고다.
끝없이 펼쳐진 시베리아 대평원.
▶ 오프로드 첫 사고, 사이드백 이탈과 ABS 고장
본능적으로 바이크를 이리저리 살피며 점검을 시작했다. 다행히 바이크 사이드 케이스만이 약간 찌그러져 있었고 큰 피해는 없었다. 시동도 문제없이 걸렸다. 바이크 여행에서의 바이크 파손은 상당한 일정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바이크에 이상이 없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셈이다.
다시 전진을 시작하자 이번엔 민구 씨의 바이크가 진행 방향과 반대로 드러눕고 말았다. 이른바 슬립(slip)이다. 걱정된 마음에 달려가 보니 일단 사람은 괜찮았다. 하지만 그의 바이크에 달려 있던 사이드 케이스가 찌그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사이드 케이스는 바이크에 짐을 싣기 위한 도구가 아닌 흉기로 돌변한다. 사이드 케이스 제조 회사를 한참 욕한뒤 다시 출발했다. 이날 우리가 달린 오프로드는 총 200km를 넘고 있었다.
유라시아 횡단 여정에 관심을 보이는 러시아인들.
▶ 기대하던 첫 캠핑은 모기와의 투쟁
러시아에서의 캠핑은 러시아 사람들도 만류할 정도다. 사람도 자연도 다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린 캠핑장비를 충분히 챙겨 왔고 이는 현명한 판단으로 판명됐다. 바이크 파손과 긴 오프로드 운행으로 인한 탈진, 그리고 어디 있을지 모르는 숙소 때문.
이런 상황에서 우린 결국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캠핑을 하고 말았다.
경찰이 캠핑하는 우리를 보면 바로 끌고 갈 것이고, 러시아는 개개인이 총을 소지 할 수 있기에 조금이라도 특이한 행인이 캠핑장소에 침범하기 시작하면 무척이나 난감한 상황이 될 수 있기에 몸을 숨기는 것이다.
캠핑 시설이 일단 구축되면 최대한 서둘러 밥을 해먹고 모기를 피해 숨어야 한다. 솔직히 경찰보다도 때로 달려들어 사정없이 피를 빠는 모기가 여행 내내 더 무서웠다.
팀장인 민구 씨가 산에 갈 때 주로 먹는다는 라면 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이어 부숴진 사이드 케이스를 망치로 펴서 바이크에 임시로 고정하는 작업을 했다.
주행 중 사이드 케이스의 이탈은 뒤따라오는 바이크에게 큰 사고를 불러일으킬 만큼 위협 요소다. 내일은 정비소를 찾아 꼭 사이드 케이스를 단단히 고정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피곤한 몸을 텐트에 눕혔다.
여행중 잠시 휴식중인 대원들
▶ 당면한 문제를 대강 해결한 것만으로도 다행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을 봐야 하는데 모기가 두려워 나갈 수가 없다. 감성보단 생존이 앞서는 하루가 이렇게 가고 있었다.
비로비잔에 루바가 소개해준 라이더에게 전화를 했고 정비소를 소개 받기로 약속을 하고 최대한 천천히 벨로그로스크로 이동 했다.
이동 내내 임시로 고정한 사이드 케이스가 떨어지지 않을까 신경이 바짝 쓰였다. 풍경 보다는 앞 차의 사이드 케이스에 집중 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게이를 만났고 들어간 곳은 허름한 일반 자동차 정비소였다. 한 눈에 도움받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들에겐 굵은 철사만을 얻고 챙겨온 공구로 은석씨의 ABS 센서 디스크와 민구 씨의 사이드 케이스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망치로 구부러진 곳을 펴고 철사를 이용해 원형을 복원하고 고정장치를 최대한 수리해 짧은 시간에 걱정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곳에 정차할 수 있었고 음료수도 마음껏 마실 수 있었으니 모두가 행복해 했다.
이날도 결국 숙소를 못 찾아 숨어서 캠핑을 했고 어느 때보다 더 모기 때문에 고생했다. 몸은 더럽고 모기에 물리고, 상처까지 입는 삼중고를 당하고 있었다.
체력이 소모되고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서서히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작성자 = 심재신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원
정리 = 정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