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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성원]광화문

입력 | 2010-07-03 03:00:00


1925년 11월 3일 동아일보에는 ‘잘 가거라 광화문(光化門)아’라는 수필이 실렸다. 필명(筆名)은 ‘고성(孤星)’으로 돼 있다. 제자리를 빼앗기게 된 광화문의 비애를 노래하며 망국(亡國)의 한(恨)을 통탄하는 내용이다. ‘너는 한참 당년(當年)에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만회하려 주야를 불문하고 너의 앞뒤를 왕래하던 충신들이며 왕성(王城)을 지켜 피로써 최후를 맞던 무명소졸(無名小卒)들의 꽃다운 혼(魂)이며 종국(終局)의 운명을 보고 눈물을 뿌리며 너를 작별하던 지사(志士)들의 그림자를 응당히 보았으리로다.’

▷일제는 1916년부터 경복궁 근정전 앞에 조선총독부 새 청사를 짓기 시작했다. 조선 왕조의 심장 같은 경복궁을 압도해 지배자의 위세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다. 경복궁의 전각들은 헐려 나갔고 궁전의 정문인 광화문도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철거됐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설의식 씨는 1926년 8월 11일 사설 ‘헐려짓는 광화문’에서 ‘경복궁 옛 대궐에는 장림(長霖)에 남은 궂은비가 오락가락한다. 광화문 지붕에서 뚝딱 하는 망치 소리는 장안(長安)을 거쳐 북악(北嶽)에 부딪친다. 남산에도 부딪친다. 그리고, 애닯아 하는 백의인(白衣人)의 가슴에도 부딪친다’고 애통해했다. 당대의 명문이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 8월 15일 광복절에 원형 복원 작업을 벌여온 광화문이 현판 제막식을 갖고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1395년 건립된 광화문은 1592년 임진왜란 때 불탄 뒤 고종 때(1865년) 복원됐다. 1926년 총독부 청사 건립을 위해 경복궁 건춘문 북쪽에 옮겨졌다가 1968년 제자리로 옮겼으나 원래 위치에서 10여 m 동북쪽으로 떨어진 데다 각도가 3.75도 뒤틀리게 배치됐다.

▷문화재청이 2006년부터 시작한 광화문 제자리 복원공사의 완공 시점을 앞당겨 광복절에 공개하기 위해 7월 말까지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도 조선왕궁의 위용(威容)을 볼 수 있게 됐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광복 후 중앙청 청사로 쓰였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 때만 해도 논란이 분분했으나 돌이켜 보면 대한민국의 자존심 회복을 위해서도 잘된 일 같다. 광화문이 복원된 부속건물들을 거느리고 왕궁 앞에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은 서울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