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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동성커플은 모두 꽃미남? 그럴리가!…허벅지 내놓고 청소하는 하녀? 꿈깨!

입력 | 2010-07-06 03:00:00

영화 속에 숨은 환상 깨뜨리기




동성애인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 대학교수의 내면을 담은 영화 ‘싱글맨’. 왜 영화 속 동성애자들은 이토록 ‘쿨’하고 유식하고 패션센스 있고 잘생긴 자들로 묘사 된단 말인가. 사진 제공 스폰지

“아, 리얼해!”

첩보영화 ‘본 얼티메이텀’을 보고난 우리는 이런 얘기를 한다. 주인공(맷 데이먼)이 ‘007 제임스 본드’와는 완전히 딴판인 ‘평범한’ 얼굴을 가진 데다, 살이 터지는 액션은 현실 속 땀내 나는 싸움을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영화는 진정 ‘리얼’할까? 아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리얼하다면 주인공인 제이슨 본은 벌써 뼈가 서른 군데는 부러져 온몸에 깁스를 하고 다녀야 했을 것이고, 영화 시작 30분쯤 지나 일찌감치 정보당국에 붙잡혀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됐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모든 영화란 기본적으로 판타지(환상)를 담고 있단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주인공이 죽지 않는 설정이야말로 엄청난 영화적 환상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영화는 교묘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환상을 주입하는데, 이런 환상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약(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현실을 망각하고 부질없는 망상을 품도록 만드는 독(毒)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자, 이제부터 최근 개봉한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환상들을 하나하나 잔인하게 깨보겠다.

먼저 동성애인과 사별한 뒤 죽음보다 더한 상실감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내면을 담아낸 영화 ‘싱글맨’. 영화에서 동성애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조지’(콜린 퍼스)를 보자. 그는 그 어떤 남자보다 깔끔한 외모에다 넥타이 매는 방식까지 고민하는 패션광이다. 게다가 성격은 글루미(우울)하고, 직업은 영문학 전공 대학교수로 “순간을 지속시킬 순 없다. 내가 붙잡으려 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처럼 희미해질 뿐” 같은 ‘있어 보이는’ 대사만 골라서 쏟아낸다. 이 남자, 변기에 앉아 변을 보는 동시에 책을 읽는 ‘멀티태스킹’ 모습까지 지독히 쓸쓸하고 ‘쿨’하게 묘사된다.

아! 동성애자에 대해 이토록 편협하고 환상적인 시각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왜 영화 속 동성애자들은 먹고사는 데 고민이 하나도 없으며 하나같이 유식하고 ‘쿨’하고 잘생겼단 말인가. 이런 설정은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고 관객을 심정적으로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환상이다. 내가 요즘 즐겨보는 TV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나오는 ‘꽃미남’ 동성애자 커플 송창의와 이상우를 보고 그 누구인들 설득당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말이다.

상상해 보라. 고려시대 왕과 호위무사의 동성애를 그린 영화 ‘쌍화점’에 매혹적인 주진모와 조인성이 아니라 유해진과 이문식이 동성커플로 나온다면 어떨까. 어쩌면 이것이 더 ‘리얼’한 캐스팅 아닐까? 동성애를 다루는 적잖은 영화들은 이처럼 동성애자들에 대한 또 다른 차원의 선입견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이런 환상에 젖어 있는 탓에 우리는 거리 리어카에서 맥반석 오징어구이를 판매하는 스포츠머리의 동성애자를 만날 경우 그들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는커녕 ‘동성애자가 패션디자이너가 아닐 수도 있네?’ 하며 충격을 먹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깡패 같은 애인’도 젊은 여성들이 주의해야 할 영화다. 이 영화에서 구직 중인 예쁜 여성 세진(정유미)은 우연히 반지하 옆집에 사는 동네 깡패 동철(박중훈)과 마주친 뒤 결국 동철의 따스한 내면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것도 영화적 환상일 뿐이다. 깡패는 깡패일 뿐, 피할수록 좋다. 이 영화야말로 ‘겉으론 나쁜 남자가 내면은 더없이 따스하다’는 위험한 상상을 여성들에게 주입하는 나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나쁜 놈은 나쁜 놈일 뿐이다. 하는 일이 더러운데 어찌 내면이 따뜻할 수 있단 말인가. 옆집에 이런 깡패가 산다면 말 한마디 섞지 말고 얼른 이사해 버리는 게 상책!

같은 맥락에서 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을 다루는 요즘 영화들의 설정에도 불만이 많다. 최근 개봉한 ‘파괴된 사나이’를 보자. 여기서 꽁치 토막 내듯 무심하게 인간을 처리하는 연쇄살인마(엄기준)의 직업은 ‘음향 전문가’다. 오디오 애호가인 그는 수억 원짜리 진공관 앰프를 손에 넣기 위해 유괴와 살인을 저지르는데,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그의 표정은 어떤 예술가보다 감성적이다.

속지 말라. 이것도 연쇄살인범에 대한 영화적 판타지에 불과하다. 영화 ‘추격자’ 속 사이코패스 살인마(하정우)의 직업이 조각가인 점도 마찬가지. 영화 ‘양들의 침묵’ 속 한니발 렉터 박사(앤서니 홉킨스)의 영향인 듯 최근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이런 설정들에도 ‘살인=예술’이라는 잘못된 등식이 저변에 깔린 것이다. 연쇄살인범은 결코 예술가가 아니다. 미친놈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최근 내가 목격한 영화적 환상 중 단연 최고는 영화 ‘하녀’다. 과연 전도연처럼 섹시한 자태로 허벅지까지 내놓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요염하게 욕조를 청소하는 하녀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 말이다. 왜 영화 속 하녀와 마님들은 하나같이 불타는 욕망의 덩어리들이란 말인가. 하긴 식스팩이 선명한 역삼각형 몸매에다 피아노까지 끝내주게 치는 주인아저씨(이정재)도 현실적인 건 아니겠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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