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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교육현안]학업평가 1주앞인데… 교육감 “안봐도 돼” vs 교과부 “거부 안돼”

입력 | 2010-07-07 03:00:00


시민단체 “학생인권조례 철회를” 바른사회시민회의, 바른교육권실천행동, ‘여성이 여는 미래’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6일 종로구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을 예비 투사로 인식하는 인권인식을 재고하라”고 주장했다. 홍진환 기자

《정부의 주요 교육 정책이 시계 제로의 폭풍우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예견됐던 것처럼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취임하자마자 정부 정책과 반대되는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이미 본 궤도에 오른 정책에 손을 대면 현장에 혼란만 초래할 뿐”이라며 맞서고 있지만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교육계에서는 “예상은 했지만 충돌이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며 “한쪽이 한발 물러서지 않는 한 상황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는 반응이 많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제일 먼저 움직였다. 김 교육감은 6일 교원능력평가제 규칙을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교원평가 거부 운동에 나섰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평가를 거부하면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김 교육감을 압박하고 나섰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도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를 공산이 커졌다. 김승환 교육감과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이 ‘미응시 학생을 위한 대체 프로그램을 마련하라’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기 때문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도 “학생 학부모에게는 시험 선택권이 있다”고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도 뜨거운 감자가 됐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학생인권이라는 표현 자체가 학생들이 비인격 처사에 시달리고 있다는 증거”라며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보수 성향 인사들은 ‘교육적 목적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뿌리를 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교육 현장은 당분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폭풍우 속에서 혼돈을 거듭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슈1] 학업성취도 평가

전북-강원 “대체 프로그램 만들라” 학교에 공문
교과부 “계획 취소 안하면 직무이행명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지부장 출신의 민병희 교육감이 취임한 강원도교육청은 6일 ‘학업성취도 평가 미응시 학생들을 위한 별도교실을 마련해 대체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세부 시행계획을 일선 학교에 내려 보냈다. 앞서 전북도교육청도 2일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업성취도 평가를 보지 않는 학생을 파악해 대체 프로그램을 학교별로 마련해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사실상 미응시 학생을 제재하지 않고 응시 여부를 학생 자율에 맡기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도 “학생 학부모는 선택할 수 있지만 교사는 거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은 “이번 시험은 예정대로 실시하고 그 대신 정부에 학생과 학부모 선택권 보장을 건의하겠다”고 밝혀 기본 입장은 똑같다. 다만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은 “학업성취도 평가를 반대한 적이 없고 시험 보는 것은 목적이 있는 만큼 정부 시책대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교육감은 “전교조와 학부모 단체, 학생이 평가를 거부하고 현장체험을 가면 정당한 수업활동 범위를 벗어난 만큼 원칙에 따라 징계나 처벌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지침에 따르면 등교 후 평가에 응시하지 않거나 체험학습을 가면 결과(缺課·해당 수업에 빠짐) 처리된다.

이에 따라 해당 교육청과 교과부의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5일 교과부는 교육정보정책관을 강원도교육청에 파견해 민 교육감에게 “미응시자를 위한 대체 교육 프로그램 계획을 취소하고, 만약 추진한다면 직무이행명령을 내릴 것”이라고 통보했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도 시국선언교사 징계를 유보했다가 직무이행명령을 받았으며 이것도 거부해 검찰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됐다. 앞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은 1일 취임식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체험학습을 승인한 교장에 대해 교과부가 징계를 요구한다 해도 징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체험학습 승인 여부는 교장의 재량이고 교과부의 징계 여부는 월권행위로 본다”고 말해 일전을 예고했다.

최근 청소년단체 ‘아수나로’가 학업성취도 평가 반대 운동의 전면에 나선 가운데 일부 교육청마저 이 같은 움직임에 동조함으로써 논란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교육청은 “교육에 관한 일차적 권리가 학생, 학부모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는 만큼 교육기관이 미응시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대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마땅한 교육적 처방”이라고 주장했다. 또 전교조 등은 학업성취도 평가가 줄 세우기와 학교 현장의 과도한 서열 경쟁을 조장한다는 논리를 펼쳐왔다.

그러나 교과부 측은 “평가는 ‘우수’ ‘보통’ ‘기초’ ‘기초미달’이나 각 과목의 부문별 성취도만 표시할 뿐 점수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줄 세우기를 조장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교사 이모 씨(41)는 “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지만 자녀가 있는 학부모 입장이라면 응시를 원할 것”이라며 “평가 준비를 위한 수업 파행만 없다면 뒤처진 학생을 찾아내 실력을 제고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이슈2] 교원평가제

진보교육감 “교사 서열화”… 전북 첫 폐지선언
정부 “결과 본인에게만 통보… 거부 법적 대응”


언젠가 터질 시한폭탄이었다.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올해부터 일선학교에서 전면 실시했지만 법적 뒷받침이 없어 교육감이 규칙만 바꾸면 얼마든지 없앨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교사들을 서열화해서는 안 된다”며 현행 제도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이 제일 먼저 칼을 빼들었다.

하지만 후폭풍은 거세다. 일단은 지지보다 반대가 많은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은 논평을 통해 “국회는 교원평가 법안을 조속히 통과시키라”고 주장했다. 중도진보성향인 ‘좋은교사운동’도 “전북교육감의 교원평가 규칙 폐지 고시는 국민들의 뜻을 거스르는 오만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지금은 여론에 밀려 선뜻 나서지 못하는 진보 교육감들도 때가 되면 김 교육감과 뜻을 같이할 것”이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을 포함해 교원평가 반대론자들은 “교원 평가 결과를 소수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이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며 “교원평가는 교사들을 줄 세우는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 교과부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5점 척도를 활용하다 보니 평균을 내면 소수점이 나오는 것뿐이다. 또 교사 개개인의 평가 결과는 본인에게만 통보한다”며 “학교 교사 전체 평균만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전체적인 경향성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교사 한 사람이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에게 평가를 받는다. 이 점수 역시 따로 따로 교사에게 전달할 뿐 세 점수를 합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수업 공개’도 논란이다. 반대론자들은 “교사가 보여주기 수업을 한 것으로 교사를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주장한다. 수업 공개를 하면 교사가 ‘특별한 준비’를 하기 때문에 학부모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교과부는 “수업 공개와 교원 평가는 별개인데 올해 동시에 실시하게 돼 수업 공개를 교원 평가 과정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례가 많다”며 “학부모 만족도 평가는 1년 동안 교사의 수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지 수업 공개를 보고 평가하라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교과부 관계자도 “연 3회 수업 공개를 의무화했지만 공개 대상은 교사에게 선택권을 줬다”며 “학부모뿐 아니라 동료 교사, 컨설턴트 등 교사가 자기 전문성 신장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에게 수업을 공개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지부를 비롯해 교원평가에 반대하는 교사들은 동료 평가를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부에 반기를 들고 있다. 동료 수업 참관을 거부하고 동료 평가 때 모든 항목에 만점을 주는 방식으로 평가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영국이나 싱가포르, 호주 등에서도 동료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미국도 주에 따라 하고 있다”며 “이들 나라에서는 부장 교사나 수석 교사(Head Teacher)가 동료 평가의 중심이다. 우리도 교장이나 교감을 포함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이슈3] 학생인권조례

수업중 매점 못가게한 것도 인권침해라니…
교총 교사 76% “반대” 아수나로 “본격 운동”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둘러싼 찬반 논쟁은 ‘보수 대 진보’에서 ‘교사 대 학생’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서울 지부와 참교육학부모회, 청소년 인권운동단체인 ‘아수나로’ 등은 7일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발족식’을 개최한다. 이에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6일 “학생인권조례 제정은 교육 구성원 간 대립을 조장한다”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교총은 논평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교라는 특성을 무시한 채 보편적 인권 가치로만 접근하고 있다”며 “학생 개인이 지나치게 인권을 강조하면 다른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수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총이 지난해 12월 전국 초중고교 교원 4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76%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사들이 이처럼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생활지도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교총 설문조사에서 교사 92%가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 생활지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답했고 78%는 “학생인권 증진이 새로운 학교 질서를 구축할 것”이라는 진보 진영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교사 93%가 학교 질서가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하는데 인권을 강조하다 보면 교실 붕괴를 막을 수 없다”며 “꼭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야 한다면 ‘교권신장조례’도 만들어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장 교사들은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조례를 제정하면 수업시간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배가 고파 수업을 못 받겠다. 매점에서 뭐 좀 사먹고 오겠다’고 말하기에 ‘수업시간이니 쉬는 시간에 다녀오라’고 하자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교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이 다른 과목을 공부하고 있어서 ‘넣어라’고 말했더니 ‘인권침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교총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 68%가 “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67%는 “인권 교육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청소년 단체와 전교조는 교육 주체인 청소년의 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당선을 축하하는 논평에서 “기본권 보장과 정치적 자유 확보, 교육의 한 주체로 서고자 싸워온 청소년들이 힘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청소년 단체 아수나로의 한 회원은 인터넷 카페에 “교육은 오히려 매우 정치적이어야 한다”며 “청소년을 미성숙하다고 보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성숙은 몇 살을 먹었느냐보다 어떤 경험과 고민을 했는지로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