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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 지표 속 마이너스 살림… 왜?

입력 | 2010-07-08 03:00:00

1년 전보다 1분기 성장 +8.1%, 취업자 +58만명… 서민은 “여전히 팍팍”




수도권 전철 1호선 부천역 인근에서 여성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김선영 씨(가명·54·여)는 최근 업종을 변경하기로 했다. 옷장사가 되지 않아 치킨이나 피자를 파는 음식점으로 바꿀 생각이다. 그는 2년 전 사업자금으로 3000만 원을 지인에게 빌려 지난해부터 매달 형편이 되는 대로 원리금을 갚고 있지만 올해 들어 6개월간은 한 푼도 갚지 못했다. 김 씨는 “뉴스를 보면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한다”며 “작년부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지금은 ‘죽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말했다.

■ 통계에 숨은 거품

작년 경기 워낙 나빠 착시
금융위기 전과 비교하면
크게 나아진 지표 없어


■ 더 커진 양극화

대기업 순익 3.3→5.9%로
中企는 -2.7→2% 그쳐
정규-비정규직 소득差 확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8.1%로 치솟고 5월 취업자 수 증가는 8년 만에 최대치를 보일 정도로 경제지표가 좋아졌지만 서민들은 좀처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사장들도 “은행 이자조차 갚기 힘들다”고 연일 한숨을 쉴 정도로 경제의 윗목과 아랫목의 온도 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 통계에 숨어 있는 거품


서민들이 경기회복을 체감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고용’이다. 취업을 해야 돈을 벌어 소비도 하고 경기의 온기를 느낄 여유도 생긴다. 올해 들어 취업자 수가 크게 늘었지만 이는 지난해 고용 사정이 워낙 나빴던 데 따른 기저(基底)효과 영향이 크다.

5월 취업자 수는 2430만6000명으로 지난해 5월과 비교하면 58만6000명 늘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2008년 5월과 비교하면 36만7000명 늘어난 것으로 증가 폭이 줄어든다. 여기에 정부가 나랏돈을 투입해 만든 희망근로 취업자(임시직) 약 10만 명을 빼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더 줄어든다. 실제 경기는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부문이 많은데, 워낙 좋지 않았던 1년 전과 비교하다 보니 나아진 것처럼 보이는 통계의 착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일자리 사정이 위기 이전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지게 회복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현재의 경제지표가 좀 더 지속되어야 일반인들이 경기회복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생산과 설비투자 통계도 위기 이전과 비교하면 거품이 상당 부분 빠진다. 5월 설비투자 지수는 126.2로 지난해 5월(103.2)보다 23%포인트 올랐지만 2008년 5월(123.1)과 비교하면 3.1%포인트 증가에 그친다.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야 추가 고용이 일어날 텐데 현재는 위기 이전 수준을 소폭 웃도는 정도에 불과해 ‘고용 엔진’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 위기 후 더 심해진 양극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더 커진 점도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윗목의 온기가 아랫목까지 데우지 못하고 있는 것.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 A 사장은 “환율이 올라도 중소기업은 그다지 덕 보는 게 없다”며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나빠 수출이 제대로 되지 않고 수입 원자재 가격 부담은 더 커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매매 계약서를 가지고 은행에 가도 대출 연장을 잘 안 해줘 중소기업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출구전략의 하나로 중소기업 보증 확대 등의 지원조치가 7월부터 중단되면서 대출금 회수가 잇따를 것으로 보여 중소기업계는 하반기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기업이 거둔 이익을 의미하는 매출액 세전순이익률은 대기업의 경우 2008년 3.3%에서 지난해 5.9%로 늘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2.7%에서 2.0%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비정규직과 저소득 계층의 삶은 더 팍팍해지고 있다. 지난해 소득분위별 소득증가율을 보면 2∼5분위는 모두 늘었지만 소득이 가장 낮은 하위 20%(1분위)는 0.9% 감소했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 수준은 2008년 3월 60.5%에서 올해 3월 54.7%로 낮아졌다.

정유훈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꺼리다 보니 저소득층과 비정규직의 삶이 개선되지 않고 있고, 이로 인해 서민들이 체감경기가 여전히 팍팍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국무회의에서 “경기는 분명하게 회복되지만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일반 서민의 생활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체감경기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주문했다.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기회복의 효과를 서민생활 전반으로 확산시킨다’는 목표를 201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포함시키고 서민 체감경기를 높이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정부는 일과 교육을 통해 빈곤을 탈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대기업과 수출기업의 실적 호조가 하청 중소기업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