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회장은 지난달 25일 소프트뱅크 30주년 주주총회에서 두 시간에 걸쳐 자사의 향후 30년간의 이념과 비전, 전략을 뜨겁게 토해냈다. 그러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가족사를 언급하는 마지막 대목에서 갑자기 목이 메어 눈시울을 붉혔다. 정확히는 14세 때 낯선 일본 땅에 건너가 고생한 할머니의 추억을 말할 때다.
불법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하여 호적에 ‘무(無)번지’라 기록될 정도로 궁핍했던 재일동포 가정. 유난히 자신을 사랑해주던 할머니를, 성장기 한때 그는 김치와 한국, 차별이 생각난다 하여 싫어하고 멀리했다고 한다. 그러다 좀 더 철이 들어 할머니와 함께 찾은 한국에서 헌옷가지 선물에도 고마워하던 이웃 아이들의 미소를 보며 자기 존재와 화해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는 할머니의 생전 입버릇이 “모두 다른 분들 덕분이었다”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고마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되자”고 호소했다. 이는 이날 발표의 결론이기도 했다.
지난해까지 일본에서 일하면서, 현지 미디어를 통해 느낀 손 회장의 인상은 왠지 ‘불편한 존재’에 가까웠다. 막대한 부(富)를 일궜지만 속을 알 수 없고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인 듯, 언론은 그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2006년 그가 일본 사상 최대 매수금액(2조 엔)으로 만년 꼴찌 통신업체인 보다폰저팬을 사들일 때는 너도나도 소프트뱅크의 몰락을 논했을 정도다. 그가 일본에 귀화할 때 ‘손’씨 성을 지키기 위해 일본인 부인의 성을 먼저 ‘손’씨로 개명시킨 뒤 귀화신청을 했을 정도로 뚝심 있는 인물이란 점도 불편한 대목이었을 수 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이처럼 달라진 걸까. 그가 ‘마사손(@masason)’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트위터 안에서 약간의 단서가 보였다. 손 회장은 지난해 말 이래 하루 일과를 트위터로 시작할 정도로 소통의 즐거움에 빠져 있다고 한다. 트위터에서 만나는 그는 때로는 수다스럽지만 진솔하고 꿈을 가진 이웃아저씨에 가깝다. 화제는 TV시청기 등 신변잡기부터 회사운영, 철학이나 정치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다. 8일 현재 그가 팔로하는 사람은 58명이지만 그를 팔로하는 사람은 44만3997명에 이르고, 이 수는 하루 천 단위씩 늘고 있다. 대중의 이해를 얻지 못했던 그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이해받고 소통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이날 그가 강조한 소프트뱅크 향후 30년 이념의 요체도 ‘정보혁명을 통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의 지혜와 지식을 모아 더욱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고 회사도 더불어 성장하겠다는 얘기다. 이런 그에게 소셜미디어와의 만남은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 소통이 그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소셜미디어는 그의 사업도 도와줘서 소프트뱅크모바일은 데이터 수익 성장세에 힘입어 이동통신업계 진출 6년 만인 지난해 업계 영업이익 2위로 부상했다.
앞으로 그의 30년 비전이 순항할지, 풍랑을 만나거나 좌초하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이 뉴미디어에 힘입어, 한 기업가의 꿈이 동시에 여럿의 꿈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가장 커져 있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