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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란 무엇인가’에 왜 한국은 빠져드나

입력 | 2010-07-09 03:00:00

하버드대 샌델교수 강의 활자화

“양극화 문제 화두로 등장하면서
소외-분배 등에 대해 관심 갖게 돼”

■ 교보문고 등 베스트셀러 종합 1위 돌풍… 인문서적으론 8년만에 처음




《인문서인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가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5월 24일 출간 직후부터 예스24(YES24) 종합베스트셀러 목록 3위에 올랐던 이 책은 8일 교보문고의 온·오프라인 주간 판매 집계에서 신경숙의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제치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인터넷 서점인 예스24에서도 이날 주간 판매 1위에 올랐고,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도 3일부터 1위를 달리고 있다. 김영사에 따르면 출간 이후 약 한 달 보름 만에 11만 부(출판사 출고 기준)가 팔렸다. 1만 부만 팔려도 ‘베스트셀러’로 불리는 인문학 서적으로는 이례적이다. 인문학 분야 책이 교보문고의 온·오프라인 종합베스트셀러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2002년 5∼6월 4주간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1’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2008년 종합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던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보다 좋은 ‘성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저 이창신 역/김영사

이 책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20여 년간 진행해 온 정치철학 강의 ‘정의(正義·Justice)’를 활자화한 것이다. 샌델 교수는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의 강의는 하버드대에서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로 뽑혔다.

이 책에서 그는 실생활에서 부닥치는 여러 가지 사례를 정의의 관점에서 논리적인 사고과정을 곁들여 설명한다. 상식적이고 친숙한 문제에 대해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연상시키는 질문을 통해 정의에 접근하고 있다. 2008∼2009년 구제금융 위기 때 미국 투자회사들이 세금에서 나온 구제금융 기금으로 상여금 잔치를 벌인 일, 2004년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휩쓸고 간 뒤 재화와 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고가로 판매한 행위 등이 정의로웠는지를 함께 생각해보자며 묻는 식이다.

특히 남성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편이다. 예스24의 인문사회역사 분야 판매담당 조선영 과장은 “지금까지 남성과 여성에게 판매되는 비율은 7 대 3 정도”라고 말했다. 연령대로는 30대가 가장 많았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출간 이후 이 책을 구입한 연령대는 30∼40세 30.6%, 20∼30세 29.3%, 40∼50세 24.3%, 50∼60세가 11.8%였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출간 기념 간담회에는 대학생과 30, 40대 직장인 500여 명이 참석했다. 김영사 장재경 마케팅본부 팀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성폭행범 ‘화학적 거세’에 대해 정의론에 입각해 토론이 벌어지는 등 논의가 뜨거웠다”고 소개했다.

 

이날 간담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금태섭 변호사는 “성장에 초점이 맞춰진 우리 사회에서 최근 양극화 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소외받는 사람, 분배 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것이 정의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요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금 변호사는 “논리적인 토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나 학교 교육이 척박한 상황에서 정의라는 굵직한 주제로 상반된 관점의 논리적 전개를 보여주는 점이 사람들의 관심을 끈 것 같다”고 전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학생들과 세미나를 연 숙명여대 이진남 교수(철학)는 “저자가 미국에서 강연한 내용이어서 그렇겠지만 논의 내용의 대부분이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전형적인 논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어서 좀 아쉬웠다”며 “‘각자에게 제 몫을 돌려준다’는 정의에 대한 원론적인 논의가 부족했다는 것을 알고 읽으면 정의에 대해 보다 균형적인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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