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조경주 그림 제공 포털아트
누구나 알다시피 편지란 교신의 수단입니다.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생겨난 수단이니 편지에 담기는 것은 사람의 ‘뜻’입니다. 종이에 뜻을 새겨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이니 장난삼아 하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고 심심풀이로 하기에는 문장을 만들고 뜻을 새겨 넣는 과정이 너무 심오합니다. 그래서 종이편지를 주로 사용하던 시대에는 요즘과 같은 대량 스팸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우표를 붙여야 하고 돈까지 드니까요.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e메일은 정말 편리합니다. 우표도 없고 실시간으로 오가니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상대방이 e메일을 개봉했는지 안 했는지도 알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e메일에 인간의 깊은 뜻을 담는 일은 왠지 어색하고 부적절해 보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e메일을 사용한 이후 내밀한 뜻을 담은 편지를 써 본 기억이 없습니다.
‘아아, 용서하십시오! 제발 어제 일을 용서해 주십시오! 사실 나는 일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오오, 나의 천사여! 처음으로, 생전 처음으로 조금도 의심할 여지없이 마음속 깊은 밑바닥으로부터 기쁨의 감정이 뜨겁게 불타올랐습니다. 로테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는 기쁨이었습니다. 당신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거룩한 불길이 지금도 나의 입술에서 불타고 있습니다. 새롭고 뜨거운 즐거움이 나의 마음속에 깃들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를 용서해 주세요!’
2008년 봄,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편지 한 통이 영국 경매업체에서 40만4000달러(약 4억2000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편지에서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밝혀 진화론과 창조론 논쟁에 또 다른 이슈를 제공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생성되고 순간적으로 삭제되는 디지털 문명적 시각으로 보자면 편지는 e메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신기한 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컴퓨터 자판의 삭제키[Delete]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그것은 인생에 아로새길 수 있는 것과 남길 수 있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무한 생성과 삭제의 시대, 아직도 종이에 편지를 쓰는 영혼의 소유자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