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대사관 피신… 외교분쟁 커질듯
영국 BBC뉴스는 13일 “자신을 이란 테헤란의 대학에서 근무하던 물리학자 샤흐람 아미리(32·사진)라고 하는 남성이 실종 1년 만에 나타나 CIA에 납치됐다 최근 탈출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아미리 씨는 지난해 5월 성지순례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가 사라진 뒤 지금까지 연락이 끊겼다.
이란 외교부는 아미리 씨가 실종된 뒤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미 정보당국이 그를 납치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 정보당국도 미국을 도왔다”며 납치설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 ABC방송은 올해 3월 CIA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미리 씨가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그가 관여하던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했다”며 이란 측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실종됐던 물리학자는 12일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논란이 일고 있다. 파키스탄 외교부는 “아미리 씨가 이날 밤 미 워싱턴 주재 파키스탄대사관에 도착해 이란으로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가 어떻게 파키스탄대사관으로 갈 수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미리 씨가 실종됐던 동안 세간에는 자신이 아미리라고 주장하는 동영상이 3편이나 공개되며 혼선을 빚었다. 지난달 8일 이란 국영TV가 방영한 첫 번째 동영상에는 “자신은 CIA에 납치됐다”고 주장했으나, 몇 시간 뒤 유튜브에 공개된 두 번째 동영상에는 “자의로 미국에 왔으며 자유롭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지난달 29일 마지막 동영상에서는 “두 번째 동영상은 가짜 인물을 내세워 날조된 것”이라며 “버지니아 쪽에 납치됐다가 최근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BBC방송은 “만약 아미리 씨가 본인이 맞고 그가 주장한 내용이 사실일 경우 미국은 상당히 입장이 난처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란 국영 라디오도 “아미리 씨의 영상이 공개되자 미국이 이번 게임의 패배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며 “미국은 이번 사건을 확대하지 않기 위해 그를 조용히 이란으로 돌려보내길 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미 정보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