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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용 99엔 보상’ 재협상 길 열렸다

입력 | 2010-07-15 03:00:00

日미쓰비시, 피해 할머니들에 “후생연금 문제 해결 노력” 통보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간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광주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올해 1월 4일 광주 서구 미쓰비시 자동차 전시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9엔에 불과한 후생연금 탈퇴 수당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일본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일제강점기에 근로정신대로 동원돼 강제노역에 시달렸던 근로정신대 할머니 문제에 대해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 민간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개인 피해자에 대해 재협상에 나설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이 소멸됐다고 주장해 온 개인청구권 관련 문제 해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노역에 시달린 근로정신대 할머니 8명에게 각각 99엔(지난해 당시 환율 약 1243원)의 후생연금 탈퇴수당을 지급해 한국에서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을 돕고 있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은 14일 “할머니들이 1944년 당시 일했던 나고야(名古屋)의 미쓰비시중공업이 이날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과 관련해 자체적으로 협상하겠다고 통보해 왔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은 15일 오전 11시경 광주 서구 상무지구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 이와 관련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당시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지급한 ‘후생연금 탈퇴수당’은 일본 정부에 납부한 후생연금 탈퇴분이다. 할머니들은 1945년 광복 이후 후생연금을 받지 못한 채 귀국했다가 뒤늦게 관련 청구를 냈다.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지급 임금에 대해서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모두 정산됐다”고 주장하며 개별 보상을 하고 있지 않지만 후생연금은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물가상승분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당시 금액인 99엔을 지급했던 점이다.

▼日이 소멸 주장했던 개인청구권 인정 물꼬 트나

광주지역에서는 지난해 9월 25일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판매장 개점을 시작으로 1인 시위가 시작됐다. ‘99엔 소송’의 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82·광주 서구 양동)가 광주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1인 시위는 20일로 200회를 맞는다. 이국언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6월 23일 국회의원을 포함해 13만4162명의 서명을 받아 미쓰비시 중공업과 일본 정부에 전달했다”며 “이미 재판이 끝나버린 사건이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사건을 한일 양국 시민들이 나서 심판대에 세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제철-아소-미쓰이 등
다른 전범기업 행보 촉각


‘99엔 소송’의 당사자인 양 할머니는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협상에 응하겠다는 통보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 눈물이 났다”며 “그동안 도와주신 시민들은 물론이고 언론 등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그는 “과거의 아픔을 잊고 이제는 너무 기뻐 웃음만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미쓰비시는 일본 전범 기업 가운데 한국인을 가장 많이 끌고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시민사회단체들은 1986년부터 전범 기업 보상을 위한 시민운동을 벌였다. 1999년 일본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쓰비시를 상대로 첫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시민단체는 1인당 3000만 엔의 보상을 요구했으나 1. 2심에서 패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8년 11월 소송을 기각해 3심도 패소했다.

이에 대해 홍영기 순천대 사학과 교수는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에 의해 일제 징집병이나 근로정신대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지만 이제는 청구권은 인정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며 “근로정신대 보상 문제가 잘 풀려 일본군 위안부 동원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내각의 2인자인 센고쿠 요시토(仙谷由人) 관방장관은 7일 도쿄 일본외국특파원협회(FFCJ) 주최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과의 전후 처리 문제에 관한 질문에 “한일청구권협정이 법률적으로 정당성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끝났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며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해 정치적인 방침을 정하고 판단해야 한다”고 밝혀 개인청구권이 모두 소멸했다는 일본 정부의 기존 방침과는 다른 입장을 밝혔다.

일본 근대사학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53) 씨가 2007년 3월 작성한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 일람’에 따르면 조선인을 일에 동원했던 기업장은 모두 2679곳이다. 이 중에는 미쓰비시 외에도 미쓰이 스미토모 등 일본 대표 재벌그룹도 포함돼 있다. 후지코시, 일본제철, 도와홀딩스, 아소그룹, 북해도탄광기선 등도 전범 기업에 속한다. 모두 일제 당시 수많은 계열사와 작업장을 거느린 대기업이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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