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무한도전\'은 VJ들의 카메라에 담은 다양한 영상을 모음으로서 스튜디오와 바깥 세상을 잇는 \'증강현실\'을 실현했다. 사진제공 MBC.
11일 첫 방영된 '일요일이 좋다'의 '런닝맨'(SBS)은 도시의 지형지물을 활용한 도시형버라이어티를 표방하고 있다. 한편 '일요일일요일밤에'(MBC)의 새 코너 '뜨거운 형제들'과 파일럿을 통해 정규 편성된 '하하몽쇼(SBS)'는 공간 자체에 대한 집착 자체를 없앤 채 새로운 '가상공간'을 창출한다.
'무한도전', '1박2일' 등 인기 버라이어티쇼로부터 비롯된 예능 공간의 다각화가 새로 시작하는 예능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또 이러한 공간의 변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최근 인기를 끈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공간과 웃음의 상관관계를 짚어본다.
공간의 변화는 경량화된 카메라로 얻어진 순발력을 통해 가능해졌다. 스튜디오에 고정된 하나의 메인 카메라가 중심에서 찍고 나머지가 그를 보조해주던 과거에서 벗어나 이제 다수의 카메라들은 간편하게 VJ들의 손에 들려 스튜디오라는 공간 바깥으로 탈주했다. 그렇게 다수의 공간을 점유한 각각의 카메라들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영상을 포착해냈고 하나로 취합되어 편집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심과 주변으로 나뉘어 지던 카메라의 시선은 동등한 위치를 갖게 되었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과거보다 좀 더 민주적인 느낌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 카메라의 분산된 시선 때문이다. 중앙집중식에서 지방(?)분산식으로 흩어진 카메라는 영상에 중앙과 주변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강권하는 듯한 카메라의 시선은 그 자체로 리얼이 아니다. 이처럼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주목되는 영상은 과거처럼 메인 카메라에 잡혀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스쳐지나가는 듯 잡혀진 주변의 영상 속에서 발견되었다. '리얼'이란 수식어는 여기서 탄생한다.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캐릭터가 현실 공간으로 뛰쳐나오면서 가상과 현실은 공존하게 되었다. '무한도전'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편에서 멤버들은 벌칙수행을 위해 이상한 분장을 하고는 거리를 활보한다. 그들은 누가 봐도 캐릭터들로서 거리의 행인들과는 다른 도드라진 존재들이다.
▶ 특정 공간, 특정 시간으로 분화… '1박2일'
공간이 바뀌면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버라이어티쇼가 시간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스튜디오 속에서 시간은 멈춰있었지만 카메라가 바깥으로 나오자 시간은 낮과 밤을 옮겨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은 자연스럽게 이 부분을 쇼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시간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계절이다. 여름과 겨울 같은 특정 계절이 가진 특징은 쇼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계절은 하나의 변수로 작용했다.
그리고 그 계절이 가진 한계점을 가장 잘 활용하면서 분화되어 나온 것이 '1박2일'이다. '1박2일'은 여행지라는 특정 장소를 목표로 지정했고, 그 장소는 여행지라는 점에서 특정 시간을 담기 마련이었다. 겨울에 가볼만한 곳과 여름에 가볼만한 곳이 다르듯이 '1박2일'은 특정 계절에 특정 공간에서의 특정한 시간(1박2일)을 정해놓고 벌어지는 사건들을 발견해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였다.
'1박2일'을 성공시킨 이른바 '복불복' 게임을 살펴보면 이 버라이어티쇼가 얼마나 계절을 잘 활용해왔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야외취침을 놓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은 혹한기의 추위와 한 여름 모기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그 강도를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계절을 담은 특정 공간 속에서 '1박2일'이 발견해낸 가장 큰 수확은 바로 사람이다. 스튜디오형 버라이어티쇼가 오롯이 출연 연예인에만 집중하던 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로 오면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난 인물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면 '1박2일'은 여행이라는 소재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인물들과의 의외의 만남을 시도했다.
독도 같은 오지의 소외된 주민들을 조명하고 백령도 같은 곳에서 우연히 군인들을 만나 씨름대회를 갖거나, 갑자기 충주대에서 벌어진 게릴라 콘서트를 통해 그 곳 대학생들과 한바탕 어우러지는 등, '1박2일'은 특정 공간에서 즉석으로 벌어지는 해프닝과 그 속에서 발견된 사람들을 따뜻하게 조명해냈다.
기산리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만난 따뜻한 주민들의 정겨운 모습은 그간 소외된 공간 속에 묻혀져 있던 사람의 흔적을 강한 향기로 끄집어내 보여주었다. 물론 이것은 시골이라는 공간 속으로 들어가 서울 촌놈 놀이를 벌이는 '1박2일' 도시 샌님들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거기서 댄디한 이승기는 어색한 촌 문화가 기묘할 정도로 잘 어우러지고, 야생 원숭이 MC몽은 제물을 만난 듯한 모습을 연출한다. 연중행사로 벌어지는 '시청자와 함께 하는 1박2일'은 그 확장형이다. 각각 한 명씩 팀을 이끌고 하룻밤을 보내는 이 행사에서는 도시와 시골의,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이들의 부딪침이 여행 특유의 즐거움으로 전화된다.
유재석이 MC를 맡은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은 도시의 지형지물을 활용한 도시형 버라이어티를 표방한다. '패밀리가 떴다'의 게임 공간인 시골이 도시로 옮겨온 것이다. 사진출처 SBS홈페이지.
▶ 게임의 공간으로서의 시골과 도시 … '패밀리가 떴다'와 '런닝맨'
'무한도전'에서 시도한 미션을 통한 일련의 도전 게임들과 '1박2일'에서의 복불복 같은 게임들은 사실상 버라이어티쇼가 얼마나 게임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스포츠를 포함한 게임은 우리가 흔히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르듯 의외의 웃음을 끄집어내기 위한 최적의 포맷이기 때문이다.
게임 버라이어티쇼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X맨'이다. 이 버라이어티쇼는 스튜디오라는 공간에서 양팀으로 나뉘어진 출연진들이 제시된 게임을 통해 우열을 가리는 형식을 갖고 있다. 사실 이런 게임은 더 과거로 가면 '명랑운동회'나 '가족오락관' 같은 것에서 그 원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시대를 넘어 변함없이 사랑받는 형식이란 얘기다. 'X맨'에 와서 달라진 점은 이 게임쇼에 어떤 심리적인 면이 부가되었다는 점이며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유재석과 강호동이 MC로 성장했고, 또 수많은 비 개그맨 게스트들이 가능성을 보였다는 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게임의 공간 역시 스튜디오 바깥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패밀리가 떴다'는 이 게임의 공간을 시골로 옮겨갔다. 이 프로그램은 그 공간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다른 공간에서 어떤 게임을 벌이는가가 주목적이 되었다.
시골이 가지는 특정 환경은 모두 게임의 소재가 되었다. 개울물 위에서 벌이는 게임은 스튜디오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생생함을 만들어주었다. 'X맨'의 '당연하지' 같은 게임은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한 때 여행지에서 나누는 일상의 심리 상황극이 되었다. 하지만 이 시골이라는 공간을 게임의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은 이 프로그램의 한계를 만들었다.
이것은 증강현실의 관점에서 보면 시골이라는 생활공간 위에 덧씌워지는 오락의 자막이 될 것이다. 누군가에는 생활이지만, 이들에게는 오락이라는 이 시각은 그 자체로 비판의 소지를 담는다. '패밀리가 떴다'가 오래 가지 못하고 단명한 것은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이 공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새롭게 시작한 '런닝맨'은 그 공간을 도시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런 비판에서 벗어난다. 도시는 그 태생상 인위적 '펀(fun)'의 스토리텔링이 매일 벌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니 '런닝맨' 같은 버라이어티쇼는 이들 도시 공간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토리텔링이 된다. 물론 도시인들이 활용하는 생활의 시간은 문제가 되겠지만, 그 시간을 피해 있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활의 시간이 지난 새벽에 '런닝맨'은 도시의 랜드마크로 들어와 그 공간이 가지고 있는 지형지물을 활용해 한바탕 게임을 벌인다.
도시라는 공간은 이로써 시골과는 전혀 다른 정서로 대중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한 쇼핑몰에서 벌어진 첫 회에서 황정음이 게임 시작 즈음에 그 공간을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은 이 버라이어티쇼가 가진 욕망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그것은 도시적인 욕망이다.
상품에 대한 욕구이며, 향유에 대한 욕망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이렇게 게임을 하는 동안, 이 공간이 본래의 기능과 상관없는 오락의 공간으로 변모한다는 점이다. 이 공간의 활용을 통한 유아적인 오락의 욕망은 이 쇼의 또 다른 축으로서 현대인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자신의 아바타에게 무리한 행동을 시키는데서 웃음 포인트를 찾는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뜨거운 형제'는 공간 자체에 대한 집착을 없앴다.
▶ 공간에 대한 집착이 없는, 혹은 공간이 없는 … '뜨거운 형제들'과 '하하몽쇼'
그것이 스튜디오이거나 혹은 야외이거나 시골이거나 혹은 도시거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저마다 공간에 대한 고려를 쇼의 기본 설정으로 잡아왔다. 하지만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말 자체가 식상해질 정도로 일반화된 지금, 공간에 대한 집착 자체가 없어진 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뜨거운 형제들'은 대표적인 사례. 이 쇼는 사실상 '뜨거운 형제들'이라는 캐릭터만 세워놓고는 뭐 하나 결정하지 않은 무형식으로 등장했다. 쇼의 시작과 함께 한상진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신개념 버라이어티쇼'라고 설명하듯이 이 쇼는 상황극 속에 리얼의 요소를 집어넣거나 현실 속에서 상황극을 벌이는 등 말 그대로 가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MT를 간다고 하고는 스튜디오의 세트로 들어오는 설정은 지금까지 야외로만 달려가던 상상력의 역발상이라 할만하다. 저녁거리를 사기 위해 스튜디오에서 거리로 나오고, 또 찾아간 편의점이 사실은 하나의 꾸며진 가상공간이라는 점은 이 쇼가 얼마나 공간에 자유로운지를 잘 말해준다.
'뜨거운 형제들'은 재미를 줄 수 있다면 그 공간이 가상이든 현실이든, 도시든 시골이든 상관없다는 자세를 갖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그 공간 속에서 보여지는 리얼한 웃음이다.
한편 '하하몽쇼'는 아예 공간 자체를 지워버린다. 스튜디오에서 토크쇼를 하다가 갑자기 준비된 화면 속으로 들어가면 그 곳은 한 편의 뮤직비디오 속이다. 물론 게스트의 속을 들여다보는 속풀이 랩을 담아내어 그것을 한 편의 뮤직비디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보여지지만, 여기서 공간은 아예 지워진다.
특정한 장소는 아무런 의미도 띄지 못하고 다만 그 장소 위에 서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그 유령 같은 공간 위에 둥둥 떠다닌다. 공간이 지워지면서 동시에 지워지는 것은 시간이다.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는 영상들은 뮤직비디오라는 한 작품 속에서 녹여진다.
이처럼 만들어지는 작품(?)에 집중하는 '하하몽쇼'는 그래서 마치 허공에 발을 디디고 있는 듯한 불안정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산만하고, 시공간이 뒤죽박죽인 듯한 분위기가 하하와 MC몽이라는 캐릭터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하하와 MC몽이 있기 때문에, 이 마구 흩어질 것 같은 이야기들은 하나로 엮어진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하하몽쇼'는 공간이 중요하지 않고,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캐릭터쇼라고 할 수 있다.
▶ 웃음과 공간의 상관관계
웃음과 공간이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기에 버라이어티쇼들은 이토록 공간에 따라 사뭇 다른 이야기를 연출하게 되는 것일까. 최근 들어 버라이어티쇼들이 골몰하는 두 가지 요소가 그 답을 제시해준다. 그 첫째는 '리얼한 웃음'이다. 과거처럼 짜여진 웃음은 쉽게 드러나고 더 이상 대중을 공감시키지 못한다.
이를 위해 카메라가 스튜디오라는 가상공간을 벗어나 현실이라는 리얼공간으로 이동되면서 공간과 웃음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굳이 '리얼'이란 수식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공간은 가상 속에서도 리얼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벌어지는 상황극은 그 공간이 스튜디오이든 아니면 시골의 한 공간이든 상관없이 리얼한 속내를 드러내게 만든다. 대중들은 물론 공간이 주는 쇼의 재미를 알고 있지만 굳이 공간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리얼한 재미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두 번째로 웃음과 공간과 관련해서 최근 버라이어티쇼들이 스토리텔링에 골몰하는 상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저 단순히 일회적인 자극이 아닌 지속적인 캐릭터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와 성장과정이 웃음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 여기에서 공간은 캐릭터가 스토리를 발생시키는 지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해진다.
'1박2일'의 여행지라는 공간은 그동안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낸다. 스토리란 결국 어떤 공간 위에 서서 시간의 흐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공간은 중요해진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에게 하나 더 부여된 새로운 공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터넷 같은 가상현실의 공간이다. 가상이지만 현실감을 부여받은 이 공간은 우리의 공간 감각에 새로운 목록을 끼워 넣는다.
마치 판타지에 불과한 것 같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는 사회. 바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아닌가. 이 수없이 분화되어 마치 무화되어버리는 것 같은 공간 위에서 예능은 그 공간의 진화와 함께 진화될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정덕현 대중문화칼럼니스트 http://thekia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