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리스트, 제대로 쓰는 조직이 이긴다체크, 체크리스트/아툴 가완디 지음·박산호 옮김/280쪽·1만4000원·21세기북스
멀티태스킹이 일상화하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던 예전에 비해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졌다. 복잡한 업무 환경에서 실수와 실패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모델299는 자칫 세상에 선보인 그날로 폐기 처분될 처지에 놓였다. 하지만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한 데서 나왔다. 미군이 만든 한 장의 체크리스트가 해결책이었다. 여기에는 이륙, 비행, 착륙, 지상 이동 시 단계적으로 점검하는 핵심 사항이 담겼다. 브레이크를 풀었는가, 계기가 제대로 세팅되었는가, 문과 창문이 닫혀 있는가 등 대부분 간단한 내용이었다.
체크리스트를 도입한 이후의 결과는 놀라웠다. 모델299로 총 180만 마일을 비행하는 동안 조종사들은 단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 폭격기는 결국 미군의 핵심 기종이 됐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B-17이란 이름으로 맹활약했다.
저자는 오스트리아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고를 예로 든다. 세 살짜리 여자아이가 연못에 빠진 뒤 30분 만에 구조됐다. 호흡은 이미 멎은 상태. 8분 뒤 도착한 응급구조요원들은 절차에 따라 응급조치를 하면서 아이를 병원으로 옮겼다. 의사는 소녀의 오른쪽 사타구니의 살을 절개해 실리콘 고무 튜브를 넓적다리 동맥에 꿰매서 피를 뽑고, 또 다른 튜브는 넓적다리 정맥에 꿰매서 피가 흘러 들어가게 했다. 일련의 조치를 취한 결과 2시간 뒤 아이의 심장이 다시 뛰었다.
평범한 시골병원에서 이 복잡한 조치가 가능했던 요인을 살핀 저자는 관계자들이 단계별로 필요한 절차를 빼먹지 않고 정확히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병원에는 환자를 치료하는 전 과정에 걸친 체크리스트가 있었고 병원 측은 오래전부터 가장 기초적 단계에 있는 응급구조대원들과 병원의 전화교환원들에게 이를 나눠주고 숙지시켰다.
또 다른 사례는 미국의 록 밴드 밴 헤일런의 케이스다. 이 밴드는 콘서트 기획사와 계약할 때 두툼한 체크리스트를 건넨다. 그중 한 항목이 특이하다. 무대 뒤에 초콜릿을 담은 그릇을 놓되 거기에 갈색 초콜릿은 넣지 말아야 하며, 이를 어길 때는 콘서트를 취소하고 피해액 전부를 보상받겠다는 조항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파브라이 인베스트먼트 펀드의 대표인 모니시 파브라이는 의료계와 항공업계에서 쓰이는 체크리스트를 모방해 금융계에서 사용 가능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기본적 재무제표 확인부터 회사의 수익이 경기 상태에 따라 과대평가 혹은 과소평가된 것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는 항목, 경영상의 위험에 대한 보고서를 검토했는지 확인하는 항목 등 ‘기본 중의 기본’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
처음 만들 때는 시간도 들고 힘들었지만 일단 리스트를 만든 뒤에는 업무 시간 단축에 큰 도움이 됐다. 주가가 한창 빠졌던 2008년 말, 이 회사는 한 분기 동안 100개가 넘는 회사를 조사해서 펀드 포트폴리오에 10개 회사를 추가했다. 체크리스트가 없었으면 이 조사 작업의 일부밖에 하지 못했을 일이다. 1년 후 투자금은 160% 이상 올랐다.
체크리스트 활용 사례를 조사한 저자는 수술실에 체크리스트를 도입하고자 ‘안전한 수술을 위한 체크리스트’를 고안했다. 세계 8개 병원에서 실험한 결과 3개월 동안 합병증 비율은 36% 떨어지고 환자 사망률은 47% 감소했다. 이 체크리스트는 현재 세계보건기구(WHO)에 공식 채택돼 세계 각지의 병원에서 활용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실패를 피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인간적 결점을 보충할 전략이 필요하다. 너무 단순해서 터무니없고 여러 해 동안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를 쌓아온 이들이 보기엔 미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 그런 전략이 있다. 바로 체크리스트다.”
▼‘경영학 대가들의 이론’ 꼬집어보기▼
위험한 경영학/매튜 스튜어트 지음·이원재, 이현숙 옮김/448쪽·1만6000원·청림출판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정치철학을 전공한 뒤 세계적 컨설팅 기업인 매킨지와 AT커니 등에서 일한 저자가 경영컨설팅의 이면을 꼬집고, 한발 나아가 경영학 대가들의 이론을 비판하며 ‘경영학 무용론’을 주창한다. 그는 “컨설턴트들은 기업의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기업으로부터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궁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과학적 경영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프레더릭 윈슬로 테일러, 인간중심 경영으로 유명한 엘턴 메이오, 경영 전략학을 만든 마이클 포터, 경영학을 대중화시킨 톰 피터스 등 경영 대가들의 이론에 숨은 비약과 논리적 허점도 지적한다. 저자는 애당초 경영학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큰 그림을 그리고 앞날을 내다보는 통찰은 오히려 철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단언한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금융시장 세계화의 ‘정치적’ 역사▼
누가 금융 세계화를 만들었나/에릭 헬라이너 지음·정재환 옮김/352쪽·1만5000원·후마니타스
그러나 캐나다의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이런 설명에 이의를 제기하며 주요 국가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금융시장 세계화의 ‘정치적’ 역사를 서술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산업국가들이 1950년대 후반 이후 세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는 설명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이 압도적인 힘을 이용해 개방적 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확립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저자는 금융시장의 세계화를 전후 미국의 지도 아래 확립된 국제 경제 질서의 직접적 결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브레턴우즈 협상가들은 1931년 이전에 있었던 개방적 자유주의 국제 금융 질서로의 복귀를 반대했다. 이들은 실제로 자본 통제를 강력하게 보장하는 비자유주의적 금융 질서를 수립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