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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이헌진]주목받는 조선족의 국제성

입력 | 2010-07-19 03:00:00


‘새벽 닭 우는 소리가 3국을 깨운다.’

중국 지린(吉林) 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훈춘(琿春) 시의 팡촨(防川)에는 ‘꼬끼오’ 한 소리에도 세 나라의 국민이 동시에 잠에서 깬다는 말이 있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 3국이 국경을 맞댄 팡촨은 높은 산맥이나 큰 강 대신 들판을 가로지른 철조망과 폭이 좁은 두만강이 국경선으로 된 특이한 접경지대다.

접경지역에서는 말 그대로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사람이 섞이고 어울리기 마련이다. 우리 민족은 100여 년 전 한반도를 떠나 3국이 만나는 이곳에 터를 잡았다. 옌볜은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의 유일한 자치주다.

중국에서 조선족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소수민족이다. 자치주의 주도 옌지(延吉) 시에 따르면 조선족 1만 명당 대학생과 과학기술자 수는 중국 평균의 2배에 이른다. 옌지 시가 최근 발간한 소개책자에는 “옌볜 조선족 마을에서 가장 멋진 건물은 어김없이 마을 학교이고, 가장 존경받는 사람은 틀림없이 학교 선생님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접경지대라는 지역적 특성과 한민족의 높은 교육열이 합해져 이 지역에서는 국제무대에 뛸 수 있는 기본 자질을 갖춘 인물이 많이 나왔다. 조선족 대부분은 중국어와 조선어를 동시에 모국어로 사용하는 2개 언어 사용자다. 조선족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제2외국어로 일본어 또는 러시아어(헤이룽장·黑龍江 성 등 러시아 접경지대)를 배웠고 최근에는 영어 열풍까지 가세했다. 조선족 식자층 가운데선 3개 언어를 하는 사람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조선족 가운데 3개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비율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세계 어느 민족과 견줘도 언어 강점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이런 언어 능력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각에서는 소수민족으로 중국에서 살면서 2개 이상의 언어를 습득하는 걸 별로 대수롭지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위구르족 같은 중국 내 소수민족은 민족어만을 고집해 중국어를 잘 쓰지 않는다. 또 다른 소수민족은 한족에 동화돼 민족어와 민족문화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중국 내 어느 소수민족과 견줘 봐도 조선족만큼 자신의 언어와 중국어를 두루 능숙하게 구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처럼 조선족은 인구가 약 625배나 많은 12억 명의 한족과 함께 살면서 한족문화와 언어를 배척하지도, 민족문화와 민족어를 잃지도 않았다. 한족화(化)를 볼 수 있는 핵심지표인 한족과의 통혼(通婚)율에서 조선족은 7.95%(2000년 인구센서스)로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 일부를 제외하곤 최저 수준이다.

최근 옌지에서 열린 ‘제2회 조선족 고위층 경제포럼’에는 많은 조선족 사업가가 모였다. 이들 중 상당수는 언어적 강점을 활용해 한국과 중국, 북한과 중국, 중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지난해 중국 중앙정부가 국가급 개발계획으로 비준한 창춘(長春)과 지린, 투먼(圖們)을 잇는 두만강유역 개발계획(창지투 계획)이었다.

이 계획은 3국 접경지대인 이 지역에 국제산업단지를 육성해 경제 규모를 2020년까지 현재의 4배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 북한, 한국과 일본을 아우르는 동북아 경제지역의 핵심 배후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과거 이 지역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접경지역의 이점을 거의 활용하지 못해왔다.

중앙정부의 강력한 개발 계획과 고향이라는 이점, 우수한 언어사용 능력 등이 어우러지면서 조선족 사회는 다시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맞고 있다.

이헌진 베이징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