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여당의 역할은 의원내각제의 경우보다 복잡하고 미묘하다. 여당은 행정부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민의를 제대로 읽어야 하고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추종일변도로 가서는 안 된다. 책임 있는 여당이라면 의회의 안팎에서 대통령의 국정리더십을 지원하는 세력이 돼야 한다. 여당이 대통령에 예속되는 일이나 국정운영의 책임성과 효율성에 기여하지 못하는 일 모두가 문제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민주·공화 양당 간 심화된 양극화의 조건에서 자신의 개혁입법을 관철하고 있다.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가 상·하원 의원과 소통하고 설득하려는 노력과 함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와 같은 민주당의 지도적 인물이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기에 가능하다.
2004년 열린우리당의 실패 사례
2004년 총선에서 민주화 이후 처음 여대야소를 이루어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열린우리당의 운명을 되새겨보자.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열린우리당은 의사소통과 팀워크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민심이 돌아서면서 열린우리당은 국회의원 재·보선에 이어 2006년 5월 지방선거에서 참패했다. 이후 여당의원조차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대선이 다가오면서 대통령과 여당은 서로 배척했다. 노 대통령은 탈당을 요구받았고 결국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여당이 아닌 듯한 여당 열린우리당은 2007년 대선의 해에 2월부터 반년 남짓 소속의원의 탈당 도미노를 연출하다가 ‘도로 열린우리당’인 대통합민주신당이 됐다. 이 정당은 잡음 많은 대선후보 경선을 거쳐 12월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듬해 총선에서 통합민주당으로 변신했는데 의석수가 대폭 축소된 원내 제2당이 됐다.
한나라당에 열린우리당의 예는 남의 일이 아니고 반면교사 역할을 할 것이다. 당내 파벌 싸움은 한나라당이 오히려 더 심하다. 제2공화국 시기에 결국은 분당했던 집권 민주당의 신·구파 대립을 연상시킨다. 정책노선과 관계없이 인물에 따라 형성된 계파는 대선후보 경선 이후 오월동주처럼 그대로 유지됐다.
전당대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탈계파를 외치고 당을 변모시키는 중대 계기를 마련했어야 했다. 민심과 동떨어진 당권경쟁은 누가 최고위원이 되든 일반 서민에게는 그야말로 ‘당신들만의 잔치’이다. 여기서도 당원과 일반 지지자를 계파로 나누고 몫을 찾는 식의 득표경쟁이 벌어졌다. 사후에 계파 갈등을 봉합한다고 외쳐 보아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자생적인 응집력이 약한 정당의 행로는 어떻게 될까. 2012년 총선은 대선 경쟁과 맞물리게 되어 한나라당에서는 대선후보에 줄서기와 공천 갈등이 치열할 것이다. 의원의 탈당과 이합집산도 점쳐지며 이런 와중에서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에 미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정계파 중심의 대선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한나라당이 어떤 후보를 내세워 정권을 재창출해도 그는 야당의 강한 견제와 당내 계파 대립에 직면할 것이다.
집권 후반 국정수행의 키워드
단임제가 아니었더라면 이 대통령은 중임을 염두에 두고 세종시수정안을 아예 제안하지 않았거나 이를 추진한다면 재선에서의 평가를 걸고 좀 더 적극적으로 임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단임에 묶이지 않았다면 임기 초부터 여당에 미래권력을 겨냥하는 비주류의 위세가 강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헌법적 문제는 차치하고 이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국정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여당인 한나라당의 역할을 크게 고려해야 한다.
박찬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