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지 않는 ‘100년 눈물’… 징용-징병 피해 22만건 접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위로금 지원은 현재 대한민국의 예산으로 집행 중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한국인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됐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들 대부분은 일본 정부로부터 직접 보상을 받겠다며 위로금 신청을 하지 않았다. 1월 13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900차 수요집회를 여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현재진행형인 ‘과거사 처리’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근원이 돼 발생한 한일 갈등은 ‘한류’나 월드컵 공동개최로 가까워진 듯 보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해 8월 일본 도쿄 스기나미 구의 교육위원회가 역사왜곡교과서인 후소샤판 교과서를 교재로 채택하는 것에 반대해 ‘스기나미의 교육을 생각하는 다함께 모임’ 회원들이 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사진 제공 ‘스기나미의 교육을 생각하는 다함께 모임’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위원회는 모두 22만8000여 건의 피해를 접수해 이 가운데 절반이 조금 넘는 12만4000여 건을 처리했다. 아직 10만6000건이 처리되지 않았다. 대부분 공식 근거가 없고 가족들의 증언만 있어 조사에 어려움이 많은 사안들이다.
지원위원회 이재철 공보담당관은 “일본 정부의 후생연금 명부나 공탁금 자료가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작년에 한국에서 넘겨준 희생자들의 일부 후생연금 명부의 존재만 알려준 상태로 입사·퇴사일, 연금규모 등의 정확한 자료는 넘겨주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직접 보상을 받겠다며 위로금 신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 갈등의 중심축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
도쿄 스기나미(杉竝) 구에 있는 ‘스기나미의 교육을 생각하는 다함께 모임’(다함께 모임)은 일본 정부의 왜곡 교과서 문제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2001년 스기나미 구가 역사왜곡 교과서인 후소샤(扶桑社)판 교과서를 중학교 교재로 채택하려 하자 학부모와 교사들이 반대운동을 벌이기 시작해 ‘다함께 모임’으로 발전했다. 당시 10만 명이 넘는 반대서명을 받아 교육위원회에 보내고, 항의의 표시로 회원 1000여 명이 구청 건물을 에워싸는 인간사슬 투쟁을 벌이며 반대한 끝에 교과서 채택을 저지했다.
일본은 교과서뿐만 아니라 고위 관료들의 망언을 통해 역사 인식을 드러내 왔다. 1953년 10월 한일회담장에서 구보타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郞) 일본 대표의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통해 혜택을 줬다’는 취지의 망언을 시작으로 1963년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 1977년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총리,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2010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지사 등 최고위급 인사들의 망언 파동이 끊이지 않았다.
일본 사회의 이런 현실에서 ‘다함께 모임’ 창립 초기 때부터 회원으로 활동해온 도모토 히사코(堂本久子) 씨의 말은 일본 정부가 새겨들을 만하다.
“교과서 문제는 비단 교육문제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다. 편협한 역사인식이 남에 대한 멸시와 배제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은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조선인학살 사건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 잘 말해주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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