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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금관이 맺어준 韓-스웨덴왕실 2代 인연

입력 | 2010-07-21 03:00:00


왼쪽 사진은 1975년 스웨덴 왕실에서 신라 토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고고학자 최남주와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브16세. 오른쪽 사진은 2004년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 재개관 행사에서 만난 최정대 대표, 스웨덴의 실비아 왕비와 칼 구스타브16세, 최정필 교수(왼쪽부터). 사진 제공 최정대 씨

“아버님 때부터 치면 벌써 85년, 저만 해도 50년 다 돼가는 인연입니다. 아버님이 훈장을 받고 1975년 스웨덴 왕실로 초청받았을 때 너무 고맙고 감격스러웠습니다.”(최정필 세종대 교수)

1926년 경북 경주시 서봉총 발굴장에서 만난 스웨덴 왕세자 아돌프 구스타브6세와 한국 청년 고고학자 최남주. 스웨덴 왕실과 한국 고고학자 가족의 인연이 대를 이어 85년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첫 고고학자인 최남주가 1971년 스웨덴 왕실로부터 바자 훈장을 받은 데 이어 그의 아들인 고고학자 최정필 세종대 교수(65), 최정대 대광상사 대표(57) 형제가 23일 스웨덴 왕실로부터 북극성 훈장을 받는다.

두 가문의 만남은 1926년 경북 경주시 서봉총 발굴장에서 이뤄졌다. 일본인 일색의 발굴단원 가운데 스웨덴 황태자이자 고고학자였던 구스타브6세, 유일한 한국인 최남주가 있었다. 이들이 발굴한 것은 황금빛 신라금관. 당시 스웨덴의 한자 이름인 서전(瑞典)의 서(瑞)자와 신라금관 봉황(鳳凰) 장식의 봉(鳳)자를 따서 서봉총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 금관은 현재 보물 339호로 지정돼 있다.

일제하 1926년 경주 탐사현장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브 6세
한국 첫 고고학자 최남주 씨와 서봉총 금관 발굴로 우정 쌓아

발굴장에서 친구가 된 이후 구스타브6세와 최남주의 우정은 더욱 깊어졌다. 구스타브6세는 6·25전쟁 당시 한국에 파견된 스웨덴 의료진에게 “경주의 문화유적을 꼭 답사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1960년대엔 10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경주의 고분 발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구스타브6세는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1971년 최남주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1973년 구스타브6세가 세상을 떠나고 손자인 구스타브16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1980년 최남주도 세상을 떠났지만 그 인연은 대를 이어갔다. 최 교수는 1960년대 한국에 온 스웨덴 사람들의 도움으로 대학을 다녔다. 고고학자가 되어 지금까지 20여 차례 스웨덴을 방문하며 양국의 문화교류에 헌신해왔다.

최 교수는 1995년 구스타브16세가 한국을 찾았을 때 경주 고분으로 안내했던 일을 기억했다. “구스타브16세는 서봉총을 돌아보고 할아버지가 심었던 나무를 지그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는 자신도 노서동 고분 주변에 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崔씨 두아들 정필-정대 씨도 王오른 구스타브16세와 교류
스웨덴 박물관에 한국실 열고 아버지 이어 왕실 훈장도 받아


양국의 문화교류에 헌신하기는 사업을 하는 동생 최 대표도 마찬가지다. 그는 “대학에 입학할 때 우리나라에 스웨덴어과가 있었으면 거길 갔을 텐데”라며 “스웨덴은 우리 가족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2000년경부터 스웨덴 국립동양박물관에 한국실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 결실로 올해 말 개관을 눈앞에 두게 됐다. 이 박물관을 건립한 사람은 구스타브6세. 스웨덴 왕실과 한국 고고학자 일가의 인연과 노력이 스웨덴 최초의 한국실 개관으로 이어진 셈이다. 훈장 수여식은 23일 오후 6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 주한 스웨덴대사관저에서 열린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