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한국 8강 이끈 지소연
“여기에 별이 하나 떠 있네요.”
설날을 하루 앞둔 제법 쌀쌀한 오후 한때. 지나가던 스님이 어느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시주하러 나온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자 스님은 방문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스님이 눈길을 준 방 안엔 돌을 막 지난 한 아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로부터 18년 뒤. 어머니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스님이 말한 의미를.
○ 강단 센 여장군

○ 축구 여제의 탄생
아이에게 인생의 전환점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왔다. 평소 공차는 걸 좋아하던 그는 우연히 학교 축구부 모집 전단을 본 뒤 축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부모 생각은 절대 반대. 남자 아이들과 함께 거친 운동을 하는 걸 지켜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피아노, 태권도, 바이올린 등 다른 걸 아무리 시켜도 아이는 오로지 축구만 했다. 결국 “축구하면 키가 큰다. 또 얼마나 멋있느냐”는 이웃집 아저씨의 설득에 힘입어 아이는 꿈에도 그리던 축구 유니폼을 입었다.
초등학생 시절 여자 축구부가 없어 남자 아이들과 뛸 때부터 아이는 두각을 나타냈다. 여자 축구부에서 뛰기 시작한 중학교 이후엔 또래 가운데 적수가 없었다. 중학교 3년 동안 12번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고등학생 땐 대회마다 최우수선수를 휩쓸어 ‘괴물’이라 불렸다. 남녀 축구대표팀을 통틀어 최연소 A매치 데뷔(15세 8개월), 최연소 A매치 골(15세 293일)의 주인공은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현재 열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그는 조별리그 두 경기에서 5골을 몰아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 “누나이자 아빠”
17일 여자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이 끝난 직후 어머니는 딸에게서 이런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전화비 비싸다고 전화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본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는 딸. 어머니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어머니는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은 뒤 이후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더 받았다. 일찍이 남편과 갈라서면서 경제사정이 어려워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정부 지원금을 받는 힘든 형편. 딸은 항상 어머니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내가 아빠 몫까지 다 할게. 조금만 기다려 줘.”
어머니 김애리 씨(43)는 “자기는 간식 하나 사먹는 것도 아끼면서 고등학생인 남동생에게 아낌없이 사주는 딸을 보면 고마우면서 또 미안하다”고 말했다. 남동생 숭연 군(17)은 “누나는 누나이면서 아빠다. 누나를 보면서 나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운다”고 전했다.
밤하늘의 별처럼 한국 축구를 빛내고 있는 지소연(19·한양여대) 얘기다. 지소연의 활약을 앞세워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8강행을 이미 확정지은 한국은 22일 오전 1시 독일 빌레펠트에서 미국을 상대로 조별리그 3차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