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그룹은 국민은행 직원 2만6000여 명 중에서 선별한 1300여 명에게 행장 후보 적임자가 누군지를 묻는 설문서를 우편으로 보냈다. 어제까지 회수된 설문지를 취합해 행장 후보 12명 가운데 1∼3위를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한 뒤 이사회 면접을 거쳐 행장을 결정할 계획이다.
은행 외부 출신이어서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어윤대 회장이 직원들의 의견을 파악하려는 순수한 뜻에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 하더라도 인기투표 성격의 행장 선정은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지난날 국민은행 주택은행 장기신용은행이 합쳐져 오늘의 국민은행이 된 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출신 은행별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은행 사람들은 지난 주말 출신 은행별로, 또는 출신 고교와 출신 대학별로 갈려 자기 쪽 연고자를 행장으로 만들기 위해 부산했다는 소식이다. 이런 모습은 ‘금융 선진화’와 거리가 먼 퇴영적 행태다. 설문조사로 행장 후보를 좁히는 방식은 금융기관까지 포퓰리즘으로 물들이고, 경영권의 핵심인 인사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을 키울 우려가 높다.
어 회장은 고려대 총장 시절 고려대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부적격(不適格) 투표라는 일종의 교수 인기투표에서 탈락해 연임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총장 직선제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가 대학에서 실패한 제도를 왜 은행에 이식(移植)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은 행장 후보가 아니기 때문인가.
누가 국민은행장이 되느냐를 떠나 직선제 방식으로 행장을 선임하는 데 따른 후유증 해소가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됐다. 이런 제도가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산돼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