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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폐단 많은 총장직선제를 은행에 이식하자는 건가

입력 | 2010-07-22 03:00:00


KB금융그룹은 국민은행 직원 2만6000여 명 중에서 선별한 1300여 명에게 행장 후보 적임자가 누군지를 묻는 설문서를 우편으로 보냈다. 어제까지 회수된 설문지를 취합해 행장 후보 12명 가운데 1∼3위를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한 뒤 이사회 면접을 거쳐 행장을 결정할 계획이다.

은행 외부 출신이어서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어윤대 회장이 직원들의 의견을 파악하려는 순수한 뜻에서 이런 방식을 택했다 하더라도 인기투표 성격의 행장 선정은 적잖은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지난날 국민은행 주택은행 장기신용은행이 합쳐져 오늘의 국민은행이 된 뒤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출신 은행별 갈등이 다시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은행 사람들은 지난 주말 출신 은행별로, 또는 출신 고교와 출신 대학별로 갈려 자기 쪽 연고자를 행장으로 만들기 위해 부산했다는 소식이다. 이런 모습은 ‘금융 선진화’와 거리가 먼 퇴영적 행태다. 설문조사로 행장 후보를 좁히는 방식은 금융기관까지 포퓰리즘으로 물들이고, 경영권의 핵심인 인사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을 키울 우려가 높다.

어 회장은 폐단이 많은 대학총장 직선제의 변형 같은 방식을 택함으로써 경영진의 고유 권한인 인사권을 스스로 흔드는 결과를 자초했다. 1∼3위 중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하지만 사원의 직접투표에서 1위를 한 사람을 배제한다면 또 다른 평지풍파가 일어날 수 있다. 직원들의 인기투표로 선임된 행장이 과연 소신 있게 은행을 경영해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국민은행은 직원 수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져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할 지주회사 회장이 행장 선임부터 노조와 직원들의 눈치를 본다면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어 회장은 고려대 총장 시절 고려대 위상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부적격(不適格) 투표라는 일종의 교수 인기투표에서 탈락해 연임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총장 직선제의 부작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가 대학에서 실패한 제도를 왜 은행에 이식(移植)하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은 행장 후보가 아니기 때문인가.

누가 국민은행장이 되느냐를 떠나 직선제 방식으로 행장을 선임하는 데 따른 후유증 해소가 시급한 현안으로 대두됐다. 이런 제도가 다른 금융기관으로 확산돼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