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양고기 먹고픈 몽골새댁 “삼시 세끼 미역국만 ㅠㅠ ”
《“못사는 나라에서 온 주제에 게으르기까지 하구나!” 2007년 한국인 남편 강모 씨(43)를 만나 한국으로 시집 온 캄보디아 출신 M 씨(21)가 오후만 되면 낮잠을 자자 못마땅하게 여긴 시어머니가 내뱉듯 이런 말을 던졌다. 덥고 습한 캄보디아에서는 낮 12시∼오후 2시에 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고, M 씨는 습관대로 잠이 들었을 뿐이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시어머니의 오해를 풀기 어려웠던 M 씨는 고민 끝에 이주여성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못사는 나라, 게으름뱅이라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새 삶을 찾아 고향과 가족을 등지고 한국에 온 결혼 이주여성들이 문화적 차이에서 기인한 오해와 냉대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주여성인권센터가 지난해 발간한 ‘결혼이주여성 인권백서’에 따르면 다문화 부부의 갈등을 초래한 원인으로 ‘생활방식의 차이’가 18.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성격 차이(17.2%), 시댁 문제(8.9%), 경제 문제(8.2%) 등의 순서였다. 문화적 차이가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 ‘틀림’이 아닌 ‘다름’ 때문에 고통
이주여성들의 고충을 듣는 상담센터의 상담원들은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한다”고 입을 모은다. 베트남에서는 아이를 낳은 산모에게 돼지족발을 삶은 물을 마시도록 한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2008년 한국으로 시집 온 H 씨(23)는 첫 아이를 출산한 후 시어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만 억지로 먹어야 했다. 또 베트남에선 따뜻한 느낌이 들 정도로만 방을 덥히는 편이지만 H 씨의 시어머니는 방바닥이 뜨거울 정도로 불을 땠다. H 씨는 “산후조리 문화가 달라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몽골에선 해산 후 양고기를 먹지만 한국에선 삼시 세 끼 미역국만 먹어 고생했다는 ‘몽골 새댁’도 있었다. 올해 초 한국 남성과 결혼한 필리핀 새댁 L 씨도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필리핀 생선요리를 식탁에 올렸다가 남편과 시댁 식구들에게 ‘이런 냄새나는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는 핀잔만 들었다”며 “모국이 무시당하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했다.
이런 박대를 당하는 이주여성들은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인권백서’에 따르면 한국 시댁에서 고통을 받은 이주여성들이 가장 많이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은 모국 출신 이민자이거나 모국에 있는 친구(34.9%)였다. 이어 친정 가족이나 친척(18.2%)이었고, 도움 받을 사람이 없다는 응답도 7.9%나 됐다.
하지만 이주여성들이 모국에 전화를 걸어 고민 상담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것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례가 많았다. 지난해 2월 결혼해 한국으로 들어온 조선족 여성 조모 씨(30)는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모국 친구와 통화를 자주 했다. 남편은 이런 아내를 “아이도 돌보지 않고 전화기만 붙잡고 있다”며 폭행했다. 1년간 이어진 폭행을 참을 수 없던 조 씨는 남편을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에서 운영하는 외국인도움센터에 입소했다.
○ 갈등 초기에 해결하면 OK
이주여성과 남편, 시댁 식구들 간의 문화적 차이로 생기는 갈등은 상대방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쉽게 해결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소장은 “문화적 차이 때문에 상담소를 찾았던 이주여성 중 절반은 오해를 풀고 시댁으로 돌아간다”고 귀띔했다. 문화적 차이로 생기는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뿐만 아니라 이주여성을 맞는 시댁 식구들이 신부 나라의 문화를 공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도 했다. 권미주 이주여성인권센터 상담팀장은 “출입국관리소 등에서 이주여성의 모국어로 커뮤니티 정보를 담은 안내책자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이미하 인턴기자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 남편 대상 다문화교육 ‘걸음마’ ▼
한국인배우자들 참여율 저조… 고려사이버大 무료강의 개설
지난해 9월 광주 남구 향교 충효관에서 베트남과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명절 차례상 차리기와 전통문화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이주여성상담센터 측은 “이주 여성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과 시댁 식구들도 상대 문화에 대해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고려사이버대는 2007년 2월부터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 등의 지원을 받아 ‘다문화가정 e-배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도시와 농촌에 산재한 많은 다문화가정의 한국 정착을 돕기 위해 사이버상에 무료강의를 개설한 것. 결혼이주 여성 등 외국인을 위한 수업이 대부분이지만 한국인 가족을 위한 수업도 차차 개설할 계획이다. 현재 한국인 가족을 대상으로 며느리 나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개설된 강의는 ‘베트남어와 문화’뿐으로 2008년 104명이 이 수업을 들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수료생이 232명으로 늘었다.
정부도 국제결혼 배우자 및 시부모 등을 대상으로 ‘결혼 준비교육’을 하고 있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을 받는다. 지난해 2725명이 전국 100곳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실시된 이 교육을 수강했다. 결혼이민자가 13만 명에 이르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수다. 지난해 한나라당 원희목 의원실이 복지부에 요청한 ‘2008년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복지부 산하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마련한 배우자·가족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 한국인 배우자는 전체 참가자의 3%에 그쳤다. 시부모들의 참여는 더 적어 100명 중 1명에도 못 미쳤다.
이주여성 지원단체들은 결혼이주 여성들이 ‘가족의 일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 배우자나 가족들도 ‘가족 맞아들이기’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려사이버대 김중순 총장은 “우리 사회가 외국 이주여성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그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며 “다른 나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목표를 둔 교육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다문화센터 통역요원 뚜이 씨 “배우자 문화 존중이 소통의 지름길” ▼
부산 사하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통역·번역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베트남 출신 느구엔티 뚜이 씨(26·여·사진)의 말이다. 뚜이 씨도 2004년 말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말이 통하지 않아 남편이나 시부모와 마찰이 많았다고 한다.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한 그는 지난해 2월부터 지원센터에서 본격적으로 통·번역요원 시험을 준비했고, 3개월 만에 합격해 정식 직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다문화가정에서 빚어지는 갈등의 대부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다”면서 “이주여성뿐만 아니라 남편도 아내의 문화와 언어를 익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대부분의 이주여성이 남편과 가족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도 경제권을 갖지 못해 가족의 눈치를 볼 때가 많다고 하소연한다”며 “경제권만큼은 부부가 동등하게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국 171개 시군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선 뚜이 씨 같은 이주여성 출신 통역·번역요원들이 ‘소통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다. 2009년 160명이던 이주여성 통역·번역요원은 올해 모두 210명으로 늘었다. 한국어능력시험과 자국어 시험을 거쳐 선발된 이들은 센터를 찾는 이주여성의 상담업무를 맡고 있다. 해당 가정을 직접 방문해 이주여성과 한국인 가족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 돼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전국다문화가족사업지원단 강복정 팀장은 “이주여성 통역·번역요원들은 센터를 찾는 이주여성들이 겪는 고충을 이미 경험한 만큼 훨씬 깊이 있는 상담을 할 수 있다”며 “앞으로 이 인원을 더욱 늘려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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