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All or Nothing’이 문제다
■ 정신병원 기피하던 주민 ‘인센티브 욕구’ 자극해 설득
중곡동 국립서울병원 “의료복합단지로 지역 발전” 해결
1962년 설립된 서울 광진구 중곡동의 국립서울병원. 지역 주민들은 ‘하얀집’이라고 부르며 이 시설을 싫어해 왔다. 정부가 1989년부터 병원 현대화를 위해 증개축을 추진하자 주민들은 이 참에 ‘병원 이전’ 요구를 들고 나왔다.
전문가들은 어떻게 하면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당시 참여했던 이강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갈등해소센터 소장은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병원 이전 못지않게 정부의 성의 있는 태도였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기 포천시 등 이전 후보지를 찾는 작업에 주민들을 동행시켰다. 주민들은 포천시장과의 면담에도 동참했다. 주민 태도가 달라졌다. 모든 과정을 속속들이 지켜봤기 때문에 ‘포천 이전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정부 결론을 이해하게 된 것.
이전이 힘들다는 점이 확인되자 양측은 병원 현대화를 지역발전과 연계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신뢰가 형성된 상태라 논의가 한결 수월해졌다. 주민들은 ‘정신병원’이 현대화된 복합의료시설로 바뀔 경우 주거환경이 나아지고 지역 이미지도 개선될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
올해 2월 양측은 국립서울병원을 정신장애연구실험 위주의 국민정신건강연구원으로 바꾸되 여기에 의료행정타운, 의료바이오비즈니스센터를 더한 ‘종합의료복합단지’를 만드는 데 합의했다. 여기에 주민들을 위해 간단한 일반 건강검진 및 진료도 할 수 있도록 했다. 21년 갈등이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이 소장은 “처음에는 밥도 함께 안 먹던 사람들이 1년 후에는 웃으며 잔치를 열었다”며 “신뢰를 쌓고 주민들이 정말 바라는 것을 파악한 후 이를 아우르는 제3의 대안을 모색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 살인까지 부른 낙태논쟁… 이견 남겨두고 ‘공약수 찾기’
美찬반 양측 “출발은 휴머니즘” 공동 캠페인 벌여
낙태는 미국 사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주요한 갈등요인 중 하나다. 미국낙태연맹에 따르면 1977∼2007년 7명의 낙태 시술 의료진이 낙태 반대론자들에게 살해당했다. 1993년 3월에는 낙태시술 전문의였던 데이비드 건 박사가 반(反)낙태운동 단체인 ‘미국을 구하라’의 조직원이 쏜 총을 맞고 숨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극한 대립이 확산되자 1990년대 초반부터 양 진영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대두됐다. 양측 대표들은 ‘생명과 선택을 위한 공통분모 연계(Common Ground Network for Life and Choice)’라는 조직을 함께 만들어 낙태 찬반 진영 활동가들의 대화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소통을 조율하기 위해 갈등해결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았다.
낙태 찬성론자들은 ‘딸이 성폭행당해 임신한 사연’, ‘빈곤층 10대 소녀의 임신’ 등 사례를 소개하면서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으로 여성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설명했다. 반대 측도 가톨릭 신자로서의 종교적 신념, 아기 사랑 등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전자는 여성의 삶에, 후자는 태아의 생명권에 각각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두 주장의 출발은 모두 ‘휴머니즘’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양측은 “찬반 신념은 서로 존중하자. 설득이나 양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약수를 발견한 이상 함께할 수 있는 일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공감에 이르렀다.
해법은 두 가지 측면에서 모색됐다. 첫째, 원하지 않는 임신을 줄이는 것이다. 둘째, 여성 혼자서도 아기를 키우며 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후 양측은 성범죄 예방, 청소년 성교육, 쉽게 피임할 수 있는 여건 만들기, 미혼모 자립 돕기, 입양 장려 등 캠페인을 시작했다. 1977∼1996년 연평균 13건이던 미국 내 낙태 찬반론자 간 폭력사건이 1997년 이후 10년간 연평균 7.1건으로 줄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