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찾아온 젊은 산타들 “선물은 문화”
《사람이 떠나는 농어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젊음과 문화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농림수산식품부가 농어촌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농어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농촌 마을의 자체 자원을 활용해 삶의 질과 문화 수준을 높이고 관광산업으로 연계하는 문화이모작 사업, 농어촌이나 오지를 찾아가 공연 미술과 같은 문화활동으로 농촌에 활력과 생기를 부여하는 대학생 문화활동 등. 경북 영덕군 한옥마을과 전남 강진군 하멜마을 등 젊음과 문화가 되살아나는 현장을 찾아 농촌 문화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그 미래를 전망해 본다.》
7월 3일 오후 경북 영덕군 인량리 오봉종택에서 펼쳐진 농촌문화기획단의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문화공연. 인량리 한옥마을에서 살아온 주민들이었지만 이날 한옥과 문화의 만남이 얼마나 활력 넘치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 사진 제공 상상공장
인량리는 늘 조용하다. 젊은이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 70여 가구 230여 명 주민 가운데 80%가 70대 이상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고요한 이곳이 이달 들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3일 오후 인량1, 2리의 마을회관 두 곳. 각각에 할머니 10여 명과 대학생 7, 8명이 모였다, 대학생들은 사탕 목걸이를 만들어 할머니 목에 걸어드리고 부채를 그려 선물했다. 흥이 난 할머니들은 라디오에서 나오는 윤수일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따라 불렀다.
비가 내리는 이날 오후 7시. 풍광 좋은 오봉(五峯)종택 오봉헌 마당에 주민들과 서울 경기지역의 대학생 200여 명이 자리를 잡았다.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농어촌’ 프로젝트의 하나인 ‘영덕 한여름의 문화산타’ 행사가 시작됐다. 대학생들로 구성된 농촌문화기획단이 춤을 추면서 트로트메들리를 불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바이올린과 가야금 해금 연주와 함께 ‘고향의 봄’, ‘아리랑’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봉산탈춤 공연, 법고와 기타 연주, 퀴즈풀이 등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퓨전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 씨가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를 연주했다. 우의를 입은 채 끝까지 자리를 지킨 주민들은 귀에 익은 가락이 흘러나오자 하나둘씩 일어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영덕군 인량리 마을회관에서 부채를 만들고 있는 인량리 할머니들과 농촌문화기획단의 대학생들. 사진 제공 상상공장
영덕지역 문화이모작 프로젝트의 핵심은 젊음과 문화다. 영덕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류재현 상상공장 대표는 “고령화로 정체된 농촌마을의 문화적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선 대학생들의 젊음을 전파하겠다”며 “그렇게 물꼬를 튼 뒤 이 지역 어르신과 주민들이 문화의 주역이 되도록 하면서 농촌문화의 활력을 되살리겠다”고 밝혔다.
상상공장 직원들과 대학생 문화예술인 등 150여 명으로 구성된 농촌문화기획단은 5월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그동안 인량리 마을 문화지도를 만들었고 주민들과 몸으로 부대끼면서 친밀감을 높여 왔다. 7월 3일의 문화산타는 그 첫 결실이었다. 7월 29, 30일엔 한옥예술제를 열고 8월엔 대학생 문활MT 페스티벌, 9월엔 전통문화 체험의 날, 10월엔 총문화 운동회, 11월엔 종갓집 손맛 나는 날, 12월엔 송구영신 등의 행사가 이어진다,
영덕군 인량리 한옥마을의 오봉종택의 전경. 안동 권씨 영해파 종가로 현재 건물은 200여 년 전에 세워졌다. 영덕=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이들의 말처럼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려면 주민이 직접 참여하고 주민에게 실질적 이득이 돌아가야 한다. 인량리에서 실무를 맡는 상상공장의 이정아 씨도 “내년부터는 주민 스스로의 잠재력을 발굴해 직접 행사를 이끌고 농사체험, 한옥스테이 등도 개발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조금씩 젊어지고 문화의 활력이 살아나는 인량리. 앞으로는 주민들이 직접 활력을 불어넣는 마을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영덕=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