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채수철 그림 제공 포털아트
태평성대의 벼슬아치는 신선처럼 끼리끼리 모여 놀았습니다. 살구꽃이 필 때, 복숭아꽃이 필 때, 연꽃이 필 때, 국화꽃이 필 때, 매화가 필 때마다 한 번씩 모여 술을 마시며 시가를 읊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술과 안주, 붓과 벼루가 지참물입니다. 술은 취흥을 부르고 취흥은 풍류를 부릅니다. 가야금과 거문고, 붓과 벼루, 소리와 시문이 있어 풍류는 더욱 융성해집니다. 술친구를 부르는 이규보의 편지는 지레 술맛을 당겨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합니다.
‘요사이 우리 집에서 술을 빚었는데, 자못 향기롭고 텁텁하여 마실 만합니다. 어찌 그대들과 함께 마시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살구꽃이 반쯤 피었고 봄기운이 무르녹아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다감하게 합니다. 이처럼 좋은 계절에 한잔 없을 수 있겠습니까?’
진정한 풍류는 술이 아니라 삶의 자세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바쁜 일상에 여백을 만들고 변화 없는 일상을 창의적으로 운영하면 얼마든지 풍류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한잔 술을 마실지라도 바람처럼 물처럼 마음이 자유롭게 흘러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을 수 있으려면 항상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외부에 의존하거나 그것에 휩쓸리는 삶은 타인의 술 상대는 될지언정 스스로 풍류의 주체가 되지는 못합니다.
바람처럼 물처럼 자유로운 삶, 그대의 발길은 언제나 자유롭습니다. 관성을 깨고 가지 않은 길을 얼마든지 갈 수 있습니다. 낯선 풍경, 낯선 사람 속에 혼자 앉아 조용히 잔을 기울이며 낯선 인생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적조했던 친구를 만나 마음의 잔을 나눌 수도 있고 혼자 앉아 자신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풍류는 마음의 여유, 마음의 자유, 그리고 나눔의 정서에서 우러나는 것입니다. 마음이 울적한 퇴근길, 마음에 떠오르는 사람을 만나 권커니 잣거니 인생의 애환을 나누어 보세요. 각박한 현실을 살지라도 한잔 술의 풍류에 마음을 실으면 누리지 못할 풍요가 무엇이겠습니까.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