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모델하우스는 개점휴업 상태다. 청약 기간 내내 아침에 찾아오는 고객에게 브런치를 제공하고 하루 종일 커피 바도 운영했지만 계약률은 아주 저조했다. 직원들도 이제는 고객을 봐도 시큰둥하다. 실컷 설명해 봤자 한 달에 한 채 팔기 어렵고 그나마 온갖 진을 빼고도 어쩌다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발코니 무료 확장에 풀 옵션을 갖춘 66m² 아파트는 계약금 2000만 원에 중도금 무이자 그리고 3년 후 입주 시점에 잔금을 낸다. 여기에다 프리미엄 보장제까지 하게 되면 건설사도 팔아도 남는 게 없다. 말 그대로 공황(패닉) 상태다.
부동산 시세가 최고조로 올랐을 때 당첨돼 최고가격으로 신축아파트를 계약한 사람들은 지금 살고 있는 헌 아파트를 최저가격으로 처분하고 입주해야 할 판이다. 목표한 바와는 정반대로 새 아파트에 당하고 헌 아파트에 당한 데다가 거래시장이 얼어붙어 팔지도 못하니 가계는 거덜 나고 사람이 병드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 하반기에 입주 물량은 사상 최대라고 한다. 경기 파주시와 고양시 용인시, 인천 청라지구 등 수도권에서만 중대형 크기를 중심으로 8만 채에 이르는 태산 같은 물량이 쏟아진다. 상반기에 입주가 안 된 5만 채에 8만 채가 더해져 이대로라면 상당수가 ‘빈집’으로 새해를 맞을 분위기다.
결국 엄청난 재화의 낭비가 사회와 경제를 멍들게 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이뤄진 금리 인하로 주택담보대출이 증가하자 이에 놀란 정부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만들었다. 그 후 집값은 곤두박질쳤고 위기를 벗어나려는 금융권과 대출 많은 가계는 오히려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대출 규제는 재산권 행사의 제한, 집값의 하락, 거래량 감소 등으로 이어져 시장 침체와 생활 디플레이션을 심각하게 했다. 분양가 상한제와 높은 보유세가 지속되면서 고급화되고 진화된 ‘업그레이드’ 주택 개발 사업은 멈춰선 지 오래며 부동산 거래 불능에 따른 유동성 악화로 경직된 개인 신용은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창조의 공간이자 행복의 터전이 되어야 할 집에 갇힌 사람들은 한숨과 고민이 늘어가고 노동생산성 하락으로 국가동력은 상당 부분이 위축되고 있다. 이른바 ‘상실의 시대’다.
봉준호 닥스플랜 대표 drbong@dakspl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