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오구’연출 ★★★★ 연기 ★★★★ 무대 ★★★
초연 후 21년 만에 첫 중극장 무대에 도전하는 연극 ‘오구’가 서울 공연을 앞두고 25일 제10회 밀양여름공연축제 성벽극장 야외무대에서 공연됐다. 왼쪽부터 맏아들 역 오달수, 강씨 할매 역 강부자, 둘째 아들 역 이승헌, 맏며느리 역 홍선주 씨. 사진 제공 CJ엔터테인먼트
성벽극장은 밀양여름공연축제 10주년을 맞아 올해 첫선을 보인 1500석 규모의 대형 야외극장. 밀양연극촌 본부로 활용해온 1층짜리 옛 월산초교 본관을 허물고 2층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외벽을 반원형의 고풍스러운 성벽으로 짓고 그 앞에 대형 야외무대를 마련했다. 프랑스 아비뇽과 독일 함부르크 등의 성벽극장을 모델로 삼아 국내에선 처음 선을 보인 이 극장이야말로 올해 밀양공연축제의 주인공이었다.
비는 9시 반경 그쳤지만 밀양연극촌 식구들의 몸과 마음은 마냥 바빠 보였다. 흠뻑 물에 젖은 1500석 규모의 야외 이동형 객석에 비닐을 덮고 비바람에 흠뻑 젖은 야외무대세트를 다시 정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거센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1500석 좌석은 빈틈 없이 찼다.
역시 그 중심엔 관객을 밀고 당기며 능청스러운 연기로 무대를 휘어잡는 강부자 씨의 노련함이 빛났다. 무당의 살타령축원을 받아서 ‘한오백년’과 ‘낭만에 대하여’, ‘처녀뱃사공’ 등의 트로트가요를 구성지게 이어 부르는 장면에선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전날 밀양연극촌 식구로는 세 번째 커플로 전통 혼례를 올린 신인배우 홍선주 씨의 당찬 맏며느리 연기에 웃음이 터졌고, 이번 무대를 위해 일본에서 건너온 배미향 씨의 신들린 무녀 춤도 큰 박수를 받았다. 1989년 초연 이후 ‘귀신 들린 연극’이란 소리를 들으며 22년간 35만 관객을 사로잡은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막은 굿판의 절정에서 “나 이제 그만 가련다”며 숨진 강씨 할매의 초상치레로 이뤄진다. 상주와 문상객, 저승사자가 하나 되는 난장이 펼쳐지는 초상치레 역시 죽음과 슬픔의 공간이 아니라 삶과 웃음의 공간으로 변신한다. 저승사자와 상주가 화투판을 벌이고, 무당과 몸을 섞는 환상공간에서 죽음은 두렵고 감춰야 할 무엇이 아니라 삶과 이웃한 친숙한 그 무엇으로 다가선다. 전막에 비해 실내극적 요소가 두드러지다 보니 야외공연으로선 다소 산만했다. 전막에서 잔뜩 긴장했다가 이완된 탓인지 공연시간도 좀 늘어졌다. 성벽극장 외벽을 저승세계로 활용한 즉흥적 무대연출은 좋았지만 정작 무대 위 세트가 변화무쌍한 극적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 채 단조로운 공간 창출에 머문 점도 아쉬웠다.
그동안 소극장공연만 펼치다 첫 중극장공연 도전에 나선 ‘오구’는 연희단거리패와 CJ엔터테인먼트의 공동제작으로 30일부터 서울 호암아트홀(700석)에서 장기공연에 도전한다. 1997년부터 ‘오구’에 출연하며 이 작품의 얼굴마담이 된 강부자 씨는 “이 작품이야말로 전통 효의 산 교육장이란 점에서 가족단위 관객이 많이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89년 초연 때 22세 나이에 할매 역에 도전해 극찬을 받았던 남미정 씨가 남씨 할매로 번갈아 출연한다.
―밀양에서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