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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당신의 자녀는]게임중독은 마약중독 같은 뇌질환… 초기대응 제대로 해야

입력 | 2010-07-27 03:00:00

■ 게임 밖으로… 치료 어떻게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팀이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기법을 이용해 촬영한 인터넷 게임중독자 (왼쪽)와 코카인 중독자의 뇌 사진 비교 모습. 김 교수는 “두 사진 모두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안와전두피질 활성화 정도가 높았다”며 “게임중독도 마약중독 같은 질환”이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분당서울대병원

게임중독 아들 “게임 못하게 하면 아빠와 생깔거야”
한숨짓는 아빠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네요”

《서울 유명 대학의 A 교수는 요즘 게임중독에 빠진 중학생 아들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오락기를 끼고 살던 아이는 게임과 함께 자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타이르다가 화가 날 때는 매도 들었지만 게임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심해졌다.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던 아들은 실제 성격까지 공격적으로 변했다. “게임을 못하게 하면 아버지와 생까겠다(무시하겠다)”며 험한 말을 서슴지 않았고 심지어 죽어버리겠다며 자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어릴 때는 제 눈치라도 보던 놈이 크니까 반항을 하더군요. 이제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게임 때문에 자식과 싸우는 부모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겁니다.”
게임중독은 일부 청소년에게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의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자란 학생들도 게임이라는 ‘가상현실’에 중독돼 가족들이 고통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얼마나 해야 중독이라는 건지, 왜 중독 증세가 생기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 등 게임중독의 예방 및 치유법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부모가 게임에 몰두하는 아이를 붙잡고 호통만 치는 사이 아이는 점점 더 가상현실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본보 독자인 A 교수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문의한 것을 계기로 A 교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독자들을 위해 게임중독의 실태와 치유법을 심층 취재했다.》

고려대 법학과에 다니는 안지영 씨(22·여)도 어릴 적에 게임중독 증상으로 부모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중학교 1학년 사춘기 때 온라인게임 ‘드래곤 라자’에 푹 빠진 것.

“게임 속 세상이 진짜 세상이었죠. 의사인 엄마 아빠와는 얘기할 시간도 없었어요. 뭔가 잘못돼 간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저 게임에만 몰두했습니다.” 그가 게임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얘기할 시간도 없다던’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몇 달째 게임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어머니는 안 씨와 함께 외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싫다는 딸에게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하루든 이틀이든 네가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현관에서 정말 몇 시간 동안 기다리는 어머니를 보면서, 안 씨는 컴퓨터 앞에서 일어났다. 그는 지금도 가끔 게임을 즐긴다. 게임에 빠질 것 같으면 스스로 중단하고, 휴식기를 가질 정도로 분별력이 생긴 점이 다를 뿐이다. 안 씨는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을 게임 밖 세상으로 나오게 하는 데는 부모의 헌신이 가장 필요하다”고 말했다.

○ 게임중독 극복은 ‘가족의 힘’

최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보라매아이윌센터에서 한 학생이 전문 상담가와 상담을 하고 있다. 서울시는 청소년 인터넷 및 게임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해 2007년 광진아이윌센터를 설립한 데 이어 지난해부터 보라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제공 서울시

전문가들은 게임중독에서 벗어난 청소년 중 많은 경우는 가족의 관심이 중독을 극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대학생 윤지훈(가명) 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고교 2학년 때까지 밤낮없이 게임에 빠졌다. 게임할 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입했다. 윤 씨 어머니는 “게임을 하는 아들의 눈은 쳐다보는 것조차 무서울 정도였다”라고 했다. 지나치게 나무라거나, 무관심할 정도로 방치하지 않았던 윤 씨 어머니의 접근 방식이 윤 씨를 게임중독의 늪에서 끌어냈다. 어머니는 게임 중독자들의 모습을 관찰한 다큐멘터리를 아들에게 보여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이 화면 속 ‘환자’와 너무 비슷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윤 씨에게 어머니는 “엄마 아빠도 힘들지만, 아들이 가장 힘들 거란 걸 잘 안다. 같이 힘내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 씨는 가족들의 격려에 용기를 내 인터넷을 끊었다. 가까스로 게임에서 벗어난 윤 씨는 그 다음 해 대학 진학에 성공해 현재 법관을 꿈꾸고 있다.

중앙대 의대 한덕현 교수는 “게임에 중독되는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가족 간 대화가 없었다”며 “특히 우울증이나 충동조절장애 등의 문제를 앓는 청소년이 대화도 하지 않으면 심각한 게임중독에 빠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 지나친 게임 몰두는 ‘질환’

우리 주변에는 어린이나 청소년의 게임중독에 대해 ‘어릴 때는 괜찮겠지’ 하고 쉽게 넘기는 사람이 많지만, 의료계에서는 게임중독을 ‘질환’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심각하고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게임중독자의 뇌 구조를 연구한 분당서울대병원 김상은 교수는 “게임중독은 뇌질환”이라고 단언했다. 그에 따르면 게임에 중독된 사람과 마약에 중독된 사람의 뇌 기능 이상 부위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나마 마약 중독은 약물 치료가 가능하지만 게임중독은 작동하는 실체가 없어 더욱 치료하기 힘들다”라며 “자녀에게 게임중독 증세가 나타나면 초기 진료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가정에서 제대로 된 ‘초기 대응’을 하면 진료 성과도 달라진다. 고교 2학년 이민규(가명·17) 군은 고교 입학 후 게임에 중독됐다. 외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야단치고 체벌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이 ‘게임중독’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 군은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한 달에 평균 60만 원 이상 게임 아이템을 샀다. 이 군의 아버지는 아들이 게임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안 다음 무조건 야단치기보다 아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는 운동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저녁마다 함께 헬스장에 다녔다. 이 군은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게임중독 증상을 인정하고, 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다.

○ 게임중독, 어떻게 치료하나

게임중독 초기 치료를 위해서는 가까운 상담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게임중독자를 위한 초기 상담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상담기관의 상담을 받은 이후 본격적인 치료는 병원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 된다.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소장은 “정신과 치료의 경우 아이들이 거부감을 갖기 때문에 먼저 상담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며 “초기 중독 단계에서는 어디든 찾아가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게임중독 진료를 받을 때는 성인과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학교실 강웅구 교수는 “청소년 게임중독자는 대부분 성인과 다르게 우울증에 걸린 경우가 많다”며 “단순 중독보다는 복합적인 원인으로 파악한 후 약물과 행동치료를 병행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김경목 인턴기자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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