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6·25전쟁 이후 출현한 ‘분단체제’는 ‘분단 상태’와 구별돼야 한다. 한반도는 세계적인 냉전체제의 중요한 일부로서 남북 분단은 전후에 분단체제로 제도화됐다. 6·25전쟁 이후 1954년 한미가 체결한 상호방위조약과 1961년 북한이 소련, 중국과 잇달아 체결한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은 분단체제의 완성판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를 지역적 상호억지체제가 확립된 때로 보기도 한다.
미국과 소련 중국이 남북 분단에 군사적, 법률적으로 직접 관여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실제로 휴전 이래 60년 가까이 전쟁은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분단체제는 ‘전쟁이 불가능한 체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은 이에 그다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북한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했을 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실미도에서 북한 침투를 위한 특수부대를 양성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북한 미그기가 미국의 정찰기(EC-121)를 격추했을 때 리처드 닉슨 미 대통령도 핵폭탄을 실은 F-4기를 대기시켰지만 이 역시 실제 공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미얀마 아웅산 폭탄테러 당시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그럼 냉전 종결 후에도 분단체제의 역설은 기능할 것인가? 냉전이 끝난 후 북한과 러시아의 조약은 상호원조 조항을 뺀 일반조약으로 개정됐다. 중국과의 조약 역시 상호원조 조항의 실효성이 의문시되고 있다. 최근 들어 중국의 일부 학자는 더는 동맹조약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과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의 체제 전복 논의마저 나오고 있다.
천안함 폭침사건을 둘러싼 논의에서 빠진 것은 대한항공기 폭파 이후 23년간 북한이 왜 테러나 도발을 감행하지 않았는지, 왜 지금에 와서 도발이 부활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동안 북한 지도부는 분단체제의 전쟁 억지기능의 저하를 두려워하면서 분단체제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북한은 독자적인 핵개발과 이번 천안함 사건으로 전쟁 억지기능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했음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