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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직 던지고 도전… 바이오융합 벤처 ‘나노엔텍’ 성공스토리

입력 | 2010-07-28 03:00:00

‘세상에 없는’ 제품 개발하다 BT 특허 120개




《여기 한 기업이 있다. 이 회사는 2000년 창업한 이래 꼬박 9년 연속 적자를 봤다. 창업 후 지인들에게서 투자받은 300억 원도 제대로 갚아본 적이 없다. 2006년 상장 당시 적자액은 260억 원에 육박했다. 2008년까지 재무제표만 놓고 보면 거의 ‘실격’ 수준인 기업이다. 하지만 지식경제부 조석 성장동력실장은 이 회사에 대해 “재미있는 기업이다. 이런 회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국내 바이오융합 벤처기업인 ‘나노엔텍’이다. 나노엔텍은 지난해 세계적인 다국적 바이오기업인 ‘라이프 테크놀로지스’사에 갖고 있던 특허 2건을 팔아 단숨에 매출 200억 원을 올렸다. 현재 나노엔텍이 보유한 생명공학 분야 특허 건수는 120여 개에 이른다. 그뿐만 아니다. 나노엔텍은 자신들이 가진 각종 기술을 기반으로 바이오 분야 연구개발(R&D) 장비를 개발해 지난해 미주와 유럽에서 매출 133억 원을 올렸다. 이렇게 얻은 당기 순이익은 143억 원. 창업 이래 첫 흑자이자 ‘대반전’의 시작이었다.》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반도체 등 다양한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바이오기기 개발에 도전하고 있는 나노엔텍 장준근 대표. 지식경제부의 국가 R&D전략기획단 단원이기도 한 그는 “서로의 학문을 존중하는 자세와 도전의 결과물을 기다려 주는 사회적 관용이 융합기술 강국을 만든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기술지주회사의 꿈

10년 전 이 회사를 차린 사람은 장준근 대표(43)다. 장 대표는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괴짜’다. 서울대 기계설계학과 학사 출신인 그는 이후 서울대 의대에서 인공장기와 세포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땄다. 보통이라면 의대 교수가 됐을 스펙이지만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 자리를 택했다.

“병원에서 연구를 하다 보니 생물학을 연구할 수 있는 도구가 너무 안 좋더라고요. 원래 제가 반도체 가공기술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이런 걸 의료와 잘 융합해서 쓸 만한 연구 장비를 만들어야겠다 싶었죠.”

2000년 그는 서울대 동료 3명, 후배, 제자 등과 함께 서울대에 교내 벤처를 차렸다. 2006년 회사를 상장시키고서는 아예 서울대 교수 자리도 내던졌다. 이들의 목표는 ‘기술 중심의 강소기업’을 만드는 것. R&D는 “남이 안 했던 R&D만 한다”는 게 원칙이었고 제품 판매나 마케팅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남들이 우리 기술을 가져다 돈을 벌 수 있는 기술만 만들면 영업은 저절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게 장 대표의 얘기다.

○공대박사 ‘종합세트’, 융합혁신 이뤄

실제 창업 이후 나노엔텍에는 줄곧 그 흔한 영업사원이 1명도 없었다. 그 대신 R&D인력만큼은 꾸준히 영입했다. 현재 나노엔텍의 직원 65명 중 70%는 R&D 인력이다. 이 중 절반 이상이 석·박사 출신이다. 회사의 기획 담당자조차도 공학박사일 정도다.

인력들의 전공을 들여다보면 더 별나다. 이 작은 회사에 기계공학 전공자부터 유체역학, 생물과학, 생화학, 전자공학, 통신, 반도체까지 별별 전공자들이 다 모여 있다. ‘세상에 없는’ 바이오연구 제품을 만들려면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을 모두 융합해야 했다.

실제 나노엔텍의 기술과 제품은 모두 ‘융합혁신’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대표 제품 중 하나인 ‘줄리(JuLI)’는 세포 배양과정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찍어 스마트폰으로 자동 전송되게 한 현미경이다. 증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실험실에 가지 않아도 집이나 바깥에서 스마트폰으로 확인할 수 있어 선진국 연구자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지금까지 눈으로 세어야 했던 세포 수를 나노기술을 접목해 자동으로 셀 수 있게 한 장비도 글로벌 세포계수기 시장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나노엔텍은 연구용 장비뿐만 아니라 일반용 의료진단 장비로까지 개발영역을 넓히고 있다. 가장 주목받는 제품은 피 한 방울로 암이나 심혈관 질환을 진단할 수 있게 한 장비다. 당뇨 환자들이 집에서 혈당검사를 할 때처럼 신용카드 크기의 진단키트에 혈청을 떨어뜨리면 5분 후 각종 암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원리는 나노기술로 큰 실험실을 진단키트에 축소해 짓는 겁니다. 대형 대학병원에 가지 않고도 동네 의원이나 보건소에서 수시로 간편하게 병을 검사할 수 있게요. 그러면 건강 위험신호도 더 빨리 잡아낼 수 있죠.”

▼ 피 한방울로 암 진단하는 ‘키트’ 만들어 주목

○ 융합성공 핵심은 ‘통역’

BT, NT, IT, 반도체 등 각종 기술을 융합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을 엮는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학력이 높을수록 자신과 전공이 다른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일하는 걸 못 견뎌요. 다른 학문과 융합 R&D를 해본 경험이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화학박사다 하면 다른 회사에서는 자기 분야 사람들하고만 일하니까 얘기가 잘 통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는 그게 아닌 거예요.”

그는 “이들이 서로 얘기가 안 통한다며 돌아설 때 ‘통역’을 하고 일할 분위기를 만드는 게 사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며 “이제는 직원 개개인이 팀 안에서 뭘 해야 하고 서로를 어떻게 도울지 너무 잘 안다”고 말했다.

“핵심인재 유출요? 그런 거 걱정 안합니다. 우리 기술은 한두 직원을 빼간다고 해서 베낄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에요. 융합기술은 ‘팀’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장 대표는 “이렇게 되기까지 8∼9년의 시간과 시행착오가 꼭 필요했다”며 “9년간의 적자는 ‘적자’가 아닌 ‘투자’였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5월 지경부가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을 중심으로 꾸린 ‘국가 R&D전략기획단’의 유일한 벤처기업 단원이자 유일한 40대 ‘젊은’ 단원으로 포함됐다.

“정부가 융합벤처를 돕고 싶어 하는데 직접적인 자금 지원은 절대 안 됩니다. 절박감이 없으면 새로운 기술이 나올 수 없거든요. 대신 그 회사의 결과물이 꽃피기까지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해요. 실패하더라도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이지 않고 기회를 주는 사회적 관용이 필요합니다.”

실제 그는 창업 이래 정부나 기관 투자를 한 번도 받지 않고 지인들의 투자만 받았다고 했다. 정부나 기관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지인이라도 10년 가까이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솔직해야 하고 거짓말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를 수시로 가감 없이 보여줘야죠. 당장 돈이 궁하다고 4∼5년이 필요한 연구를 1년이면 된다고 해서도 안 되고요. 이러니까 ‘황당하지만 두고 보자’며 기다려주더군요.(웃음)”

그는 “한국은 가진 게 머리밖에 없는 나라니 벤처를 해야 하고 지식산업을 해야 한다”며 “도전에 대한 사회적 관용만이 한국을 ‘기술지주국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