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매출 35.8% 늘어난 191개 기업, 일자리는 13.4% 줄여
국내 1000대 기업의 2005∼2009년 고용과 매출 추이를 분석해보면 매출은 증가하고 기업 규모도 계속 커지는데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 구조가 점차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지난 5년간 매출 1000위권을 유지한 750개 기업 가운데 40%에 해당하는 297개 기업이 9만7539개의 일자리를 줄였다. 이 기업들 중 2005년보다 2009년 매출 규모가 줄거나 5년간 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기업은 모두 106곳. 이런 기업이 일자리를 줄이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매출 규모가 늘고 순이익을 나타낸 191개 기업도 직원 규모를 줄였다.
성장했지만 고용을 줄인 기업에는 KT, 포스코, LG전자, 삼성전기, 한국전력공사, 한국공항공사 등 국내 최고 수준의 대기업과 공기업이 대거 포함됐다.
고용 없는 성장을 보인 191개 기업이 5년간 줄인 일자리는 4만9835개. 2005년 당시 이들 기업의 전체 종업원 37만2023명의 13.4%에 해당하는 규모다. 해당 기업의 매출 규모는 2005년 267조7462억 원에서 2009년 363조6818억 원으로 35.8% 성장했다.
가장 많은 일자리를 감축한 기업은 KT. KT는 2005년 3만7904명이던 종업원을 2009년 3만841명으로 줄였다. 고용 감소율이 18.6%나 된다. KT는 2009년 실시한 특별명예퇴직을 대규모 인력 감축의 원인으로 꼽았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조직을 슬림화하고 유무선 통합에 맞는 조직 재편을 위해 근속기간 15년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5992명의 명퇴 신청을 받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KT에 이어 포스코도 같은 기간 일자리 2488개를 줄였다. 포스코 측은 “제철소 현장의 장기 근속자가 많다 보니 매년 많게는 400∼500명씩 정년퇴직자가 나온다”며 “글로벌 경기침체로 창사 이래 첫 감산을 단행한 지난해에도 400명 이상을 신규 채용했고 최근에는 그 수를 600명 이상으로 늘렸다”고 전했다. KT와 포스코는 평균 근속연수가 18∼19년으로 매출 100대 기업 중 근속연수가 가장 긴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다.
성장에도 불구하고 인력을 줄인 기업 상위 3, 4, 5위에 각각 오른 LG전자, 삼성전기, LG화학은 사업 분사로 종업원 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79개 일자리가 줄어든 LG전자는 2008년에 전자회로기판(PCB) 사업을 LG마이크론에 넘겼다. 삼성전기는 2009년에 발광다이오드(LED) 부문을 떼내 삼성전자와 삼성LED 법인을 출범시켰다. LG화학 역시 2009년에 산업재 사업본부를 LG하우시스로 분사했다.
○ 미래 투자 늘려 일자리 창출해야
이처럼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임금에 비해 노동 생산성이 낮아 기업의 노동절약적 투자가 심화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임금 수준이 높아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는 대신에 자동화 설비 등에 투자를 늘려 노동절약적 투자를 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2008년 기준 국내 1인당 GDP 대비 임금 수준은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보다 높다. 임금이 전체 경제가 감당할 만한 수준보다 높아 신규 채용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기업들이 강성 노조와의 갈등으로 고용 조정을 하지 못해 경기 회복 국면에도 고용을 크게 늘리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노조의 지나친 기득권 보호가 신규 채용을 확대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다.
성장 없는 고용은 산업구조의 변화로도 설명된다. 자동화 설비 등 인력이 필요 없는 고도화 라인 때문에 생산성이 늘어 기업으로서는 고용을 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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