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안 읽는다 말고 쉽게 읽히게 해야죠”1973년 안 씨 초판, 정 씨가 거들며 개정판 발간 “한글 단어로 찾으면 해당 한문구절까지 나오게”
《“내가 한번 해볼까?” 지난해 4월, 소설가 정인영 씨(77)의 이 한마디로 중국 고전 ‘장자’의 색인 작업이 시작됐다. 번역가 안동림 씨(78)가 1973년 ‘장자’ 번역본 초판을 낸 이후 두 번째 개정판을 내면서 벼르던 일이었다.50년 지기인 두 사람은 1년 동안 매주 월요일 서울 성북동의 감자탕집과중국집에서 만나 ‘장자’에 밑줄을 긋고 단어와 문장을 뽑았다. 최근 출간된 ‘장자’(현암사)는 장자 번역본 770여 쪽 외에 259쪽에 달하는 색인이 붙어있다. 단어와 문장으로 나누고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함께 실었다. 국내에 번역된 중국 고전 중 색인까지 함께 나온 것은 처음이다.》
27일 이들을 성북동의 한 자장면 집에서 만났다.
“1958년쯤, 명동에 ‘갈채’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둘 다 글 쓴다고 거기서 소일하다 만났습니다. 돈 없어서 밖에 앉아 있다 누가 차 사준다면 들어가고, 원고료 받으면 점심 사먹고 그랬죠.”(안 씨)
안 씨는 영문학과를 나와 청주대 교수를 지냈고 고전 번역가와 음악 칼럼니스트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장자’ ‘벽암록’ 등을 번역했고 음악평론서 ‘이 한 장의 명반’ ‘불멸의 지휘자’ 등을 썼다. 정 씨는 소설가로 ‘나갈 길 없는 지평’ ‘소설 손자’를 냈다.
27일 서울 성북동의 공원에서 만난 번역가 안동림 씨(오른쪽)와 소설가 정인영 씨. 두 사람은 “색인은 수시로 고전을 뒤지고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활용도가 높아 꼭 필요한 길잡이”라고 입을 모았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정 씨가 중요하다 싶은 단어와 구절에 밑줄을 긋고 컴퓨터에 입력해 매주 A4 용지 서너 장의 글을 갖고 가면 안 씨가 읽어보고 보충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내가 뽑아간 글 중 혹시 한문 음을 잘못 단 게 있으면 이 친구가 보고 고쳐줬죠.”(정 씨) “에이, 고칠 것 몇 개 없이 완벽했지.”(안 씨)
정 씨가 컴퓨터에 입력한 한자만 약 15만 자. 이들이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읽히는 장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안 씨는 “젊은 친구들이 한문을 아나요. 그래서 색인을 단어와 문장으로 나누면서 한글을 먼저 썼어요. ‘장자에 뱁새를 예로 든 구절이 있었는데…’ 싶으면 색인에서 뱁새를 찾으면 정확한 한문 구절까지 찾을 수 있게요”라고 말했다. 색인에서 ‘공자’를 찾으면 단어는 물론 ‘공자가∼’ ‘공자는∼’부터 ‘공자행년육십이육십화(孔子行年六十而六十化)∼’까지 가나다순으로 나온다.
색인 작업은 올 초에 끝났지만 두 사람은 매주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만나 오후 시간을 함께 보낸다. 중국집 맞은편에 있는 다방에서 안 씨가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친구 영향으로 정 씨도 클래식 감상 경력이 50년을 넘었다. 스마트폰에서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 로리’가 피아노 연주곡으로 흘러나왔다. 안 씨가 말했다. “잘 몰라도 많이 들으면 좋은 음악이 뭔지는 알아요. 책도 마찬가지죠. 고전이 어렵다고 피할 게 아니라 마음에 드는 구절부터 읽으면 세상을 사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장자 색인 예시
·공자孔子가 대답했다. ‘…군자君子란 어질지仁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고, 의義롭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인의仁義는 정말 인간의 본성입니다…’[外-天道] 358
‘공자’가 본명인 공구(孔丘), 자(字)인 중니(仲尼) 등으로 언급된 페이지를 썼고, ‘공자’로 시작하는 구절을 가나다순으로 나열했다. [外-天道]는 장자 외편 중 천도(天道)에 대해 쓴 내용 속에 있다는 말이고, [內-大宗師]는 내편 중 대종사(大宗師) 부분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한글로 먼저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