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은 여성이 그냥 예의상 짓는 눈웃음이나 상냥한 말투를 과장되게 해석해 그녀가 내게 푹 빠졌다고 추론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친절인지 성적인 의도인지 애매하다면 남성은 일단 성적인 의도를 읽어내고 본다. 이런 인지적 편향 탓에 성희롱이 종종 심각한 사회문제로 불거진다.
한국 사회에서 성희롱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흔히 남성중심적 문화가 지목된다. 남녀의 마음은 원래 같지만 사회화 과정을 통해 남성은 하룻밤 성관계를 추구하게끔, 여성은 현모양처로 처신하게끔 길러진다는 관점이다.
진화적 시각은 유전적 생리적 문화적 사회적 요인을 통합하는 밑그림을 그려준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수백만 년 전 여성의 성적 의도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했던 남성들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다고 본다. 이들이 여성의 성적 의도를 있는 그대로 추론했던 남성들보다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많은 자식을 둔 남성의 자식 수가 1000명이 넘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의 진화적 성공은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가능한 한 많이 가질수록 증가했다. 반면에 여성은 평생 낳을 수 있는 자식 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여러 남성과 성관계를 함으로써 얻는 이득은 비교적 적었다.
여성의 행동에서 성적 의도의 유무를 추론할 때 두 가지 오류가 가능하다. 성적 의도가 실제로 ‘없는데’ 있을 거라고 과대평가하는 오류, 그리고 성적 의도가 실제로 ‘있는데’ 없다고 소심하게 과소평가하는 오류이다.
소심하게 과소평가하는 바람에 여성과의 성관계 기회를 놓치는 일은 우리의 조상 남성들에게 진화적으로 엄청난 재앙이었다. 이 때문에 남성은 비교적 피해가 덜한 선택지로, 여성의 성적 의도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오류를 잘 저지르게끔 진화했다.
의학자들은 암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을 얻어서 암을 치료하고 예방한다. 마찬가지로 남녀가 똑같은 행동을 다르게 해석하게끔 진화했다는 과학지식을 활용해 우리 사회의 성희롱 발생 건수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전중환 경희대 학부대학 교수 진화심리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