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작년 9월 취임 이후 세종시 수정안 관철에 다걸기를 하다시피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0개월 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정 총리 자신도 “개인적인 아쉬움을 넘어 장차 도래할 국력의 낭비와 혼란을 방지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정 총리로서는 다소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세종시 총리’의 책임을 피해갈 수는 없다. 지방선거 이후 여권 전반의 쇄신이 대세로 부각된 점도 심적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집권 후반기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용퇴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총리 교체가 기정사실화함에 따라 개각 폭이 상당히 커질 가능성이 있다. 개각 얘기가 나오면서 공무원들이 인사에 촉각을 세우고 눈치를 보느라 일손을 놓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 지도 꽤 됐다. 이러니 개각을 오래 끌어서는 바짝 일할 시간을 낭비해 국정 진도를 떨어뜨리고 국민에게는 인사 피로감만 줄 우려가 있다. 집권 후반기는 우리 사회 모든 부문에서 선진화의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야 할 시기다. 이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는 점에서 한두 달 낭비를 가볍게 볼 수 없다.
어떤 후임 총리를 인선할지는 이 대통령의 후반기 국정구상에 달려 있다. 이 대통령은 경제 문제 등 실용적 국정에서 능력을 발휘할 총리를 찾을 것인지, 세대교체 또는 정권 재창출 등 정치적 함의가 있는 총리를 선보일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어떤 경우건 일도 잘하고 조정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한다. 일국의 총리라면 국민에게 지도자로서 희망을 제시하면서 여당과 야당, 그리고 국민 각계와 멋지게 소통할 수 있는 매력을 지녀야 한다. 그저 경력만 그럴듯하고 무색무미(無色無味)하며 누구에게도 책잡힐 것 없는 청풍명월(淸風明月)형 명망가는 피했으면 좋겠다. 총리를 포함한 내각이 속이 꽉 찬 실력 있는 인물들로 바뀐다면 임기 후반기임에도 국정에 탄력이 붙을 수 있을 것이다. 그저 대통령의 등 뒤에서 접시 안 깨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는 인물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