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기도 정혜인의 어머니 공민주 씨가 독일전을 보면서 두 손을 모은 채 응원하고 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넉넉지 않은 살림 10년간 홀로 키워
외롭게 자란 딸 선수생활 만류도
이젠 잠자는 모습만 봐도 힘이 절로
소녀는 어릴 적부터 또래들과 달랐다. 인형보다 장난감 총을 더 좋아했고, 순정 만화보다 운동장에서 뛰는 공놀이를 훨씬 즐겼다.
그래도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미워할까. 대표팀에선 맏언니지만 스트라이커 정혜인(20·현대제철)은 어머니 공민주(50) 씨에게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예쁘고 착한 딸일 뿐이다.
“조금 선머슴처럼 보이죠? 옛날에는 정말 늘씬했는데….” 공 씨와 대화하는 동안, ‘늘씬’ ‘날씬’이란 단어가 쉼 없이 반복됐다.
공 씨는 야간 업소에서 주로 활동하는 무명 연예인이다. 예전에는 유명 개그맨 구봉서, 배삼용, 백남봉 등과 함께 종종 코미디 공연을 함께 했지만 지금은 주로 노래를 부른다. 또한 미사리 개그 클럽에서 매니저로도 활동하고 있으니 소위 ‘프리랜서’ 연예인이다.
수입이 많지 않아 하루 8∼9군데씩 뛰어야 한다. 저녁 6시쯤 출근해 새벽 4시나 돼야 퇴근하니, 정혜인이 합숙을 끝내고 가끔 집에 와도 자는 모습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 씨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그 때였다.
“딸이 오랜만에 집에 와서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죠. 요즘 우리 딸이 축구하는 걸 알아서인지, ‘너 참 딸을 잘 키웠다’라고 칭찬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공 씨는 10년 째 딸을 홀로 키웠다. 2000년 혜인이 아빠와 이혼했으나 앞서 수 년 간의 별거 생활까지 합치면 ‘강산이 한 번 이상 바뀌는 시간’을 모녀 둘이 함께 지낸 셈이다.
시련도 많았다.
오주중-동산정보고-한양여대를 거쳐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WK리그 현대제철에 입단했으나 작년 3월 왼발 피로골절이 왔다.
하지만 재활에 성공, 다시 그라운드에 선 정혜인은 독일 무대를 누볐다.
“엄마로서 부족한 게 많아요. 딸이 뛰는 시합도 많이 가지 못했죠.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찾을 때가 있었는데, 사실 제 목소리가 엄청 크거든요. 이름 없이 ‘잘한다’만 외쳐도 혜인이는 ‘엄마가 왔다’고 알 수 있데요. 이번에도 멀리서나마 제 목소리가 전해졌으면….”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