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진입해서 다시 평탄한 아스팔트길을 달리다 보니 문득 지난 몽골 여정을 정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간 우리가 거쳐 온 구간은 몽골과 북쪽 러시아와의 국경에서부터 남쪽으로 수도인 울란바타르를 거쳐 서쪽 바얀홍고르, 알타이, 홋드, 올기이로 연결되는 약 2000km에 이르는 구간이었다. 러시아에서 몽골로 넘어오면서 경제력 차이가 확연함을 실감하기도 했다.
포장된 도로라고 해도 곳곳에 맨홀 뚜껑이 열려 있는 등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다. 수도인 울란바타르라고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근래 한국에서 한참 단속 중인 교차로 꼬리물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난폭한 운전은 물론이고 작은 도로에서도 차들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기싸움을 벌였다.
결국 방어운전이 최선이었다. 자동차 보험이라는 제도가 정비되지 않아 사고라도 나면 여행자는 골치 아파진다. 벤츠 SUV를 운전하는 한 한국인 사업가는 차량사고가 난 후 가해자로부터 염소 한 마리를 받는 데 그쳤다고 하니, 몽골 도심에서의 운전이 더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 우리가 만난 몽골의 풍경과 몽골인들
몽골은 개방적이다. 역사적으로 앙숙인 중국만 아니라면 그 어느 나라에게도 개방적이다.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도움을 준 몽골 주민들
수도인 울란바타르뿐만이 아니다. 알타이에서 들어간 모텔의 여직원도, 이름도 모르는 작은 마을에서 차량을 구할 때도 어디선가 한국말이 가능한 몽골인이 나타나 우리를 돕기도 했다. 또 사막에서 지나가던 버스를 세워 길을 물었을 때도 승객 중에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나 친절한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울란바타르를 제외한 나머지의 몽골은 1000년 전이나 무엇이 다를까 싶을 정도로 황량했다. 땅바닥에 파인 자동차 바퀴 자국을 제외하면 사방을 둘러보아도 그저 모래와 발목 높이의 풀과 양, 낙타, 말 뿐이었다. 아마도 마을 어귀마다 볼 수 있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개량형 게르, 그리고 그 매장에서 파는 몇몇 가공식품만이 과거의 몽골과 다른 점일 것이다.
음식이나 물 어느 것 하나 넉넉한 게 없었다. 하지만 사막에서 심한 갈증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그 누구라도 주저 없이 물 한 병을 건넬 정도였다. 우리가 보기에 사는 모습이 궁색해보였지만 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3위란다. 가진 것이 적어도 인심이 후한 대인(大人)들이 바로 몽골인이 아닐까 싶다.
■ 기마민족답게 몽골인 또한 바이크를 사랑했다
몽골인은 기마민족이다. 사실 말을 타는 것과 모터사이클을 타는 것은 비슷한 점이 많다. 모터사이클이 말보다 좀 더 빠르고 좀 더 멀리 갈 수 있을 뿐…. 최소한 이곳 몽골에서는 너무도 비슷했다.
몽골 사람들이 주로 타는 바이크 엔진의 크기는 125cc 정도였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아는 대형 모터사이클의 제조사가 아니었다. 이들의 바이크를 훑어보니 그 조악한 부품들이 어떻게 험난한 도로의 진동과 충격을 견디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매일 출퇴근, 등하교길에 그런 모터사이클을 운행하는 그들의 눈에, 모험이랍시고 화려하게 행진하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어떻게 비쳤을까?
몽골인의 라이딩 복장은 흥미롭다. 안에 솜을 덧댄 비단도포에 긴 금색줄로 허리를 둘둘 감아 묶고 신발은 운동화 또는 가죽장화이다. 기마민족인에게 모터사이클이란 말을 대신해 주는 아주 훌륭한 교통 수단이다. 다만 소득이 낮은 이들에게 리터 당 1400원이나 하는 기름을 사야하는 것은 부담일 것이다.
몽골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서 여름이면 전 세계의 수많은 라이더들이 모여든다. 우리도 하루에 적어도 두 팀 이상의 라이더들과 인사했다. 한결 같이 험난한 몽골 도로사정에 고개를 흔들고 손사래를 쳤다. 우리도 그들도 이 길을 다시 오고 싶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 길에서 수많은 추억거리를 만들었다.
고생한 막내
재밌는 얘깃거리는 사고를 친 사람이 만들어 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얘깃거리 뒤에는 조용히 수습해야 하는 숨은 공로자도 필요하다. 우리 팀에서는 막내가 몽골에서의 모든 뒤처리를 도맡아 해주었다.
형들 바이크 넘어진 것 되돌아가서 세워주기, 타이어 펑크 수리하기, 무거운 짐 실어주기, 텐트치기 등등. 형들은 몸이 다쳐 힘을 못 쓰니 멀쩡한 막내 혼자 다 힘을 써야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숨은 실력도 숨은 성격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아마도 우리는 막내의 진가를 맛보기 위해 몽골에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 몽골인들의 배포와 여유, 그리고…
몽골의 서부는 몽골의 다른 지역과 확연히 달랐다. 지형도 알타이 산맥이 시작되면서 높은 산의 만년설에서 흘러 내려오는 계곡물로 군데군데 호수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민족도 카작민족이다. 카자흐스탄과 같은 민족이다.
올기 게르체험장
올기이에서 만난 게르주인은 "여기는 모두 이슬람이다", "우리 게르는 몽골의 게르보다 더 크고 구조도 다르다"며 은근히 몽골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었다. 확실한 것은 몽골인들과의 갈등은 없었다는 점이다.
올기이 시내의 풍경 또한 이슬람국가들에서 볼 수 있을 듯한 문양들이 집의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르의 바닥과 벽면은 중동의 카펫으로 둘러쳐져 있다. 사람들의 생김새도 우리의 모습과 달리 눈썹의 윤곽이 뚜렷하고 피부색이 아랍인들의 피부색과 비슷하다. 하지만 친절하기는 마찬가지고 중국인을 싫어하기도 마찬가지다.
몽골의 사람들과 자연에서 한없이 거대한 배포와 여유를 배웠어야 하는데 우리는 이 여행에서 고난의 극복과 부족함을 견뎌내는 인내를 배웠다.
아마도 자연이 주는 고난과 부족함에 익숙해져 여유가 생긴다면 세상의 어느 곳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성자 = 이민구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