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준생 父子대조적 삶 그려섣부른 손가락질보다 상생 강조2막 연기자들 호연에 갈채 쏟아져대본 ★★★★ 연출 ★★★★ 무대 ★★★★ 연기 ★★★☆
연극 ‘나는 너다’에서 영웅의 아들로 태어나 변절자로 손가락질 받는 안준생을 연기하고 있는 송일국 씨. 연극무대에 처음 도전한 송 씨는 정확한 발성과 고도의 집중력으로 당당한 안중근과 연약한 안준생의 1인 2역을 소화해냈다. 사진 제공 월간 객석
다스베이더는 왜 그토록 인상적인가. 그는 루크의 아버지로서 루크의 내면적 어둠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스베이더라는 ‘윤리적 기회비용’이 있기에, 루크는 영웅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는 안중근 의사를 그린 여러 영웅서사들에 빠진 점이 있었다면 바로 이러한 그림자다. 안 의사는 너무 ‘옳고도 바른’ 인물로만 그려진 탓에 이 땅에 살아 숨쉬었던 인간적 존재로 다가서지 못한다.
연극은 준생(송일국)을 구천을 떠도는 허깨비로 불러낸다. 접이식으로 된 커다란 스크린에 연해주 허허벌판이 비치는 가운데 준생은 어떤 그림자에 계속 쫓긴다. 100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아버지의 시신이 만리타국을 떠돌며 고국에 안장되지 못한 탓인가. 그의 할머니 조마리아 여사(박정자)와 어머니 김아려 여사(배해선)의 혼령도 여전히 구천을 떠돌지만 준생을 알아보지 못한다.
상복을 입은 코러스가 ‘호랑이 같은 아비 밑에 개 같은 자식’이란 뜻의 ‘호부견자(虎父犬子)’를 소리 높여 외치며 준생의 수치스러운 삶을 맹비난한다. 준생은 “스스로 택한 것도 아니었는데 안중근의 아들이라는 굴레를 쓰고 바람 속을 떠돌 수밖에 없었다”며 “잘못된 시대에 잘못 태어나 운명의 고삐를 놓쳤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캄캄한 어둠 속에 아들을 묻었다”하고 할머니는 “가거라. 다시는 환한 데로 나오지 마라”며 그를 외면한다.
2막에서 송 씨는 안중근으로 등장한다. 그는 일제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성을 잃고 일본군 포로를 학살하려는 독립군 동지들에게 “나를 지키고 이웃을 지키며 적마저 지키며 살리는 것이 우리 배달족의 도리”라고 설득한다. 이어 단지(斷指)동맹과 하얼빈에서 이토에 대한 저격, 그리고 뤼순감옥의 재판과정에서 시종일관 조선과 일본의 상생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뜻을 피력한다.
1막을 숨죽여 봤던 관객들은 2막에서 거침없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특히 일본법에 의지해 목숨을 구걸하지 않겠다며 항소거부의사를 밝히는 아들에게 조 여사가 “더 망설일 것 없다. 천주님 앞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며 작별을 고할 때 가장 큰 박수가 터졌다. 김 여사가 손수 지은 옷을 남편에게 입혀주며 “당신 위해 오늘은 한 벌 옷을 짓고 당신 위해 내일은 한 독의 술을 빚겠다”며 “진달래 흐드러진 봄 들판에서 우리 기쁨을 마실 날을 기다리겠습니다”라는 대사를 읊을 때는 눈물을 훔치는 관객도 많았다.
소름이 끼친다. 안 의사가 자신의 목숨을 바친 대의야말로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모두를 아우르는 상생과 대동의 세계가 아니었던가. 김 여사의 대사처럼 “못난 애는 못나서 가슴 저리고, 나쁜 애는 나빠서 가엾다”는 그런 돌봄의 마음이 아니었던가. 영웅의 아들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던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쉽게 손가락질해도 되는 걸까. 접이식 반투명막과 바닥을 이용한 감각적 영상, 때로는 폭포 같고 때로는 안개 같은 조명 그리고 집중력 높은 연기가 혼연일체가 돼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쏟아 놓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3만∼8만 원. 서울 중구 장충단길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