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국경을 넘는 것은 우리에겐 신나는 일이었다.
"고난의 끝 행복의 시작"이란 말이 딱 맞는 듯했다. 그만큼 몽골은 힘든 곳이었다. 느닷없이 나오는 모래무덤, 끝없는 빨래판길, 갈증, 땀과 모래바람에 찌든 옷과 몸, 뭐 하나 쾌적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몽골의 국경을 넘는 순간, 아스팔트길과 사람들, 주유소와 마켓들, 시원한 계곡물이 우리를 반겼다. 살면서 익숙해서 존재의 이유를 몰랐던 것들이 너무 반가웠다.
바다를 보기 힘든 아시아의 중원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곳 오비강은 일종의 휴양지였다. 우리나라에서 양평길, 청평길, 충주호, 내린천, 동강 변의 풍경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군데군데 노점상들이 군집한 곳에 관광버스가 손님들을 실어 날랐다. 파는 것은 생선말린 것과 샤슬릭, 아이스크림, 수공예품 등이다.
러시아서부 고속도로변 가스티니짜
■ 알타이 산맥과 오비강을 건너 러시아 제3의 도시로
러시아 복귀 첫날은 캠핑을 하기로 했다. 도로에서 빠져나와 산길을 타고 올라가 가장 높아 보이는 알타이 산의 만년설이 잘 보이는 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냈다. 몽골의 무용담을 나누며 부족한 식단을 채우고, 흙먼지 없는 상쾌한 산바람과 달달한 러시아 커피믹스로 후식까지 마치고 모두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이른 아침 출발 준비를 마치고 간단한 루트 브리핑을 한다. "노보시비르스크까지는 약 800km정도이다. 가능한 그 근처까지 가서 숙박을 해고 다음날 아침 노보시비르스크에 들어가 오전관광을 하고 다음 목적지로 떠나자." 로드는 막내가 선다. 간만에 질주다. 와인딩(굽이길)도 있고, 계곡길도 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라더니 800km의 대부분이 산맥을 오르내리는 와인딩으로 채워져 있어 운전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조건이 쾌적하기에 몽골에서와 같은 긴장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몽골에서 늦어진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서 계속 달려야 했다.
샹프에서 도움준학생과
야영이 금지된 이곳에서 도시에 가까워지면 숙소를 잡아야하는데 무엇보다 숙박업소 자체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방이 비어 있어도 가격을 내릴 생각을 안 한다. 러시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노보시비르스크 시내에서 호텔을 잡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지만 외곽지역에서 값싼 모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시내로 들어오고 말았다.
컴컴한 밤 11시 지도 한 장 없이 한마디 말도 안 통하는 사람들에게 시베리아 중심도시 노보시비르스크는 불친절했다. 길은 삐쭉삐쭉 제 멋대로 나있어 몇 번 회전을 하면 제자리로 돌아오기 일쑤이고, 건물에는 간판이 없어 어느 것이 호텔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번듯한 로비를 갖춘 건물조차 없었다(다음날 확인을 해보니 그날 밤은 시내의 남쪽외곽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묻기를 반복하여 알아낸 호텔은 나무들에 가려 숨겨져 있었고, 리셉션 데스크의 여직원은 서툰 영어에 대화도중에 가격을 번복하기 일쑤였다. 가격 확인하기를 반복하고 비싼 이 호텔에서 묵을 것인지를 회의한 뒤 호텔에 들어간 시각은 거의 한시가 돼서였다. 아침 출발 14시간 만에 여장을 풀 수 있었다. 호텔은 깨끗하고 좋았지만 다들 녹초가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쓰러져 잤다.
러시아서부 도로변 노점상
■ 광활한 대륙의 한복판에 이토록 불친절한 숙박업소가…
전날의 피곤함에 12시경에야 호텔을 나섰다. 늦어진 일정에 비자기간 내에 러시아를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매일 700km이상을 달려야 하지만 400km가 넘어 어둑어둑 해지자 로드는 숙소를 잡았다.
어제와는 다르게 고속도로변 휴게소에는 간간히 가스트니짜(게스트하우스)라는 간판이 보이기 시작했고 값은 한 사람당 400루블(약 1만6000원), 바냐(목욕) 100루블, 모터사이클 주차 50루블 정도로 저렴한 편이었다. 컨테이너 운전자들이 묵는 숙소여서 덩치가 크고 험하게 생긴 이들로 북적였다.
고속도로변 노점상에서 휴식
숙소의 주인에게서 친절함은 찾을 수 없었다. 러시아는 대개 그랬다. 손님이 돈 내고 먹고, 돈 내고 사고, 돈 내고 자도 파는 사람은 불친절했다. 미소조차 볼 수 없었다.
아쉬울 게 없으니 싫으면 가라는 식이었다.
카잔의 성과 교회
■ 한정된 비자 기한으로 인해 러시아 서부지역 관광은 포기
하지만 러시아의 트럭기사들은 무척 친절했다. 이들은 우리에게 러시아어로, 우리는 짧은 영어나 한국어로, 나머지는 몸짓으로 대화를 해도 서로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여기서(튜멘) 모스크바까지 최단 거리가 3200km라며 이 고속도로를 타고 쭉 가면 된다고 일러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날 밤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심각한 토론을 벌였다.
"우리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하루씩이라도 관광을 하자면 앞으로 3일간 무려 3000km를 가야 한다."
다들 숙제처럼 남겨진 지도를 보며 얼굴이 일그러졌다. 러시아의 3분의 1의 관광을 포기해야하는 상황에 다들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리적인 시간과 거리를 뒤바꿀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카잔
물론 오기 전에 러시아 비자 문제 해결을 위해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 비자종류를 모두 알아봤고, 외교통상부의 지인을 통해 러시아 외무성에도 연장 요청을 해봤지만 허사였다. 이 밖에도 몽골에서 다시 비자를 받는 방법,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는 방법, 여행 중 모터사이클을 보관하고 사람만 러시아를 나가서 비자를 받는 방법도 강구해봤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합법적인 여행, 그리고 시간과 비용을 고려해 체류 30일 이내에 러시아를 빠져나가자고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달콤한 여정을 위해 3일간은 계속 이렇게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작성자 = 이민구 / 유라시아횡단 바이크팀 '투로드' 팀장
정리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