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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균의 7080 야구] ‘73구 완봉’ 23년전의 추억

입력 | 2010-08-05 07:00:00


한국프로야구 1세대 스타이자 ‘원조 컨트롤 아티스트’ 임호균(54) 씨가 5일부터 매주 스포츠동아에 ‘임호균의 7080야구’ 칼럼을 연재한다. ‘7080야구’는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전성기를 달렸던 그가 그 시절 경험한 야구계의 뒷얘기를 풀어놓는 마당이다.

올드팬들에겐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더듬을 수 있는 기회이며, 최근 야구의 묘미에 빠지기 시작한 젊은 팬들도 과거의 야구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오늘날의 야구와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터이다. ‘임호균의 7080야구’는 단 73구만에, 역대 최소투구수 완투(완봉)승을 거뒀던 1987년 여름날의 이야기부터 출발한다.

해태와 상대한 1987년 8월 25일이니까 프로 5년차, 서른한 살일 때다.

83년 삼미에 입단해 프로생활을 시작한 필자는 그해 말 상대 선수 네 명과 맞바뀌는 4-1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했다. 그리고 3년 뒤인 1986년 말, 삼미의 혈통을 잇는 청보로 다시 돌아왔다.

고향팀에 돌아온 첫해라 뭔가 더 잘해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그날은 특히 홈인 인천구장에서 경기가 열렸고, 상대는 당시 최강타선이라 불리던 해태였기에 볼 하나하나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필자는 평소에 투구 인터벌을 길게 하지 않았다. 투수가 야수를 도와줄 수 있는 건 빨리 수비를 끝내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날도 타자들과의 승부에서 호흡을 빨리했다.

당시 해태 타선은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한대화 이순철 장채근 등이 포함된 그야말로 막강타선이었다. 경기를 하다보면 ‘타자들이 내 페이스에 끌려오는구나’하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는데, 그날 경기가 딱 그랬다. 상대 타자들이 내가 주로 스트라이크 승부를 한다는 걸 알고 초구부터 달려들었다.

1회와 4회, 사구와 볼넷으로 주자를 출루시켰지만 견제로 잡고 병살타를 유도하면서 7회까지 노히트노런을 펼쳐갔다. 7회가 끝난 뒤 어느 정도 기록을 의식했다. 하지만 욕심내면 탈이 난다고 8회 곧바로 노히트노런이 깨졌다.

선두타자 김성한의 평범한 내야땅볼을 3루수 이선웅이 처리하다 엉덩방아를 찧고 뒤늦게 볼을 던졌지만 세이프가 됐다. 쉬운 타구라 처음엔 실책을 주려니 했는데 결국 내야안타로 기록됐다.

9회에도 안타 하나를 더 맞았다. 최종 기록은 9이닝 2안타 1볼넷 1사구 무실점.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5-0 완봉승의 주인공이 됐는데, 그날 투구수 73개에 경기시간은 1시간 54분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무잔루 게임’이라는 점도 기억에 남는다.

8회와 9회, 안타를 맞고도 곧바로 병살타로 연결했다. 완봉승을 거두며 삼진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어떻게 보면 신기하지만, 그래서 73구 완봉승이 나올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2006년 7월 6일, 두산 용병 랜들이 우천 강우콜드게임으로 끝난 잠실 KIA전에서 5이닝 61구로 완봉승을 거두긴 했지만 정규이닝 73구 완봉승 기록은 현재까지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필자에게도 가장 의미있는 기록이지만 말이다.

임호균
삼미∼롯데∼청보∼태평양에서 선수로, LG∼삼성에서 코치로, MBC와 SBS에서 방송해설을 했다. 미국 세인트토머스대학 스포츠행정학 석사. 선수와 코치 관계는 상호간에 믿음과 존중, 인내가 이루어져야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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