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 폭염특보가 내린 3일 오전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한 쪽방촌 건물. 60여 세대가 살고 있는 이 건물 1층에 들어가자 더위를 피해 복도로 나와 드러누워 있는 세입자가 맨 먼저 눈에 띄었다. 불과 10여m 남짓한 좁은 복도 끝까지 양쪽에 방 14개가 있었다. 방문을 열자 70대 노인이 러닝셔츠 바람으로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여름에는 방 안이 한증막 같아서 잠을 못 잘 지경이지. 밖에서 자고 들어오는 날도 많아." 1993년부터 이곳에서 홀로 살고 있는 김문환 씨(70)가 힘겹게 말했다.
8년 전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고 7년이 넘게 이곳에 살고 있는 곽관순 씨(41)의 방은 사정이 더 심각해 보였다. 곽 씨의 방에는 창문이 하나 있지만 방충망도, 창도 없는 '뚫린 공간'일 뿐이다. 창문 바로 앞 50㎝ 너머에는 옆 건물의 회색 콘크리트 벽이 가로막고 있다. 곽 씨는 밤마다 더위와 모기와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뜨거운 방 안에 반바지만 입은 채 누워있던 곽 씨는 "밖에도 못나가 하루 종일 누워있을 수밖에 없어 등과 팔, 다리에 욕창만 생겼다"며 몸을 일으켰다. 곽 씨에게는 얼마 전 동네 지인이 가져다준 1만 원짜리 중고 선풍기가 유일한 피난처였다.
쪽방촌은 수도 시설이 열악해 더위로 익은 몸을 식히기도 힘들다.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쪽방촌 거주민 김용기 씨(52)가 거주하는 건물에는 주민 6명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집 밖의 수돗가에서 세면과 샤워를 한다. 온수도 나오지 않는 비좁은 수돗가 옆에는 거주자 6명이 나누어 쓰는 비누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김 씨는 "집 밖에서 샤워를 하다 보니 낡은 커튼으로 겨우 몸만 가리고 급히 씻는다"고 말했다.
전기세 등 공공요금 인상 소식은 쪽방촌 주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하루 중 가장 무더운 오후 2시 영등포동 쪽방촌은 그늘진 길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축 늘어진 채 누워있던 이들은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길거리가 차라리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입을 모았다. 전기세를 납부할 여력이 없어 찜통 같은 방에서 선풍기조차 함부로 켤 수 없기 때문이다. 쪽방촌 주민 이기하 씨(63)는 "선풍기라도 마음껏 틀고 싶다"며 "여기 사람들은 새벽 2~3시나 되어야 방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기획재정부는 공공요금 인상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3.5%, 4.9%씩 올린다. 주택용은 인상폭이 2%대로 낮고 기초생활수급자와 사회복지시설 주택용 전기할인율을 기존 20%에서 21.6%로 올린다고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다. 환경운동연합 양이원영 국장은 "쪽방촌 등에 사는 소외계층은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는 경우가 많아 전기 사용량이 오히려 많다"며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대책보다는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바꿔주는 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쪽방촌의 경우 슬레이트 지붕을 교체하는 등 건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양 국장은 "가정용 전기 사용은 산업용 전기 사용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인데 기업에는 싼값에 전기를 이용하게 하고 가정용 전기세를 올려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덧붙였다.
신민기기자 minki@donga.com
강경석기자 coolup@donga.com
유정민 인턴기자 중앙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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