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멜라트銀 불법’ 한국에 통보
하지만 미국 측이 건넨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문제행위 기록’이 대(對)이란 제재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 징후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이란 제재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해 온 정부가 5일 독자적인 제재 방안 검토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외교통상부와 기획재정부 일각에서는 ‘미국이 한국 정부에 제시한 기록은 이란의 핵확산 활동 관련 자금세탁 등 위법 행위를 담고 있고, 한국 금융당국도 조사를 통해 위법성을 이미 확인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 국제분쟁의 초점으로 떠오른 멜라트 서울지점
따라서 미국 측이 한국 정부에 전달한 기록에는 이란 정부의 핵무기 개발 관련 거래 내용과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의 관련 자금세탁 활동이 담겨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부 내의 한 중동 문제 전문가는 “이란 정부가 미사일이나 그 부품을 해외에서 수입해 온다고 할 때 거래신용장(LC)에 ‘무기’라고 쓰지는 않는다.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이 이란 정부의 지시 등에 따라 이런 불법적인 거래나 자금에 개입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멜라트은행은 자산규모 기준으로 이란에서 두 번째로 큰 국영은행이다. 이란 내에 1800여 곳의 지점을 갖추고 있지만 해외 지점은 서울을 포함해 5곳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해외 지점은 터키와 아르메니아 등 중동 인근에 몰려 있다. 이란은 중동에서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연간 40억 달러에 이르는 한국의 대(對)이란 수출 가운데 3분의 2가량이 멜라트은행을 통해 거래되고 있다.
○ 핵 연루 사실 밝혀내면 지점폐쇄 가능
미국 정부는 멜라트은행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자금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올 6월 말 미 의회를 통과한 ‘포괄적 이란 제재법’의 제재 대상 기업과 개인 명단에 포함시켰다. 멜라트은행과 거래하는 은행은 국적을 불문하고 미국 금융회사와의 거래가 중단된다. 이에 따라 외환은행을 비롯한 국내 은행들은 멜라트은행 서울지점과 거래를 모두 중단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이 6월에 착수한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검사의 핵심도 이 지점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자금에 연루됐느냐 하는 점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란 제재 결의안 1929호는 회원국들이 자국 영토 내 이란 은행의 활동이 이란의 핵확산이나 핵무기 운반체계 개발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정보가 있는 경우 활동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제재 대상인 이란 은행과 거래하는 외국 은행에 불이익을 주는 내용을 뼈대로 한 미국의 이란 제재법 시행세칙이 10월경 마련되는 만큼 멜라트은행 서울지점에 대한 제재 조치를 서두를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는 미국의 핵확산 방지 노력에 ‘공조’하면서도 이란과의 정상적 교역은 지속할 묘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