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여보, 고마워’에서 한심하고 무능한 남편 역을 맡은 박준규. 그는 가수가 콘서트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를 연극에서 느낀다고 했다.
■ 연극 ‘여보, 고마워’ 주연 박준규
“관객 반응 바로바로…콘서트 연 가수처럼 짜릿”
동국대학교 이해랑예술극장의 텅 빈 객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 한 남자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들어왔다. 연극 ‘여보, 고마워’에 출연 중인 배우 박준규(46)와 SBS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을 통해 익숙해진 그의 아들 박종혁 군이다.
사실 ‘준수’는 평소 박준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에게는 여전히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쌍칼’이 제격처럼 보인다. “‘준수’는 제 실제 모습과 아주 다르죠. 저 집에서 일 안 해요. 가끔 설거지라도 해볼까 싶은데 와이프가 안 시키려 들더라고요. 언젠가는 공연을 보고 난 후배가 ‘형, 너무 가증스러운 거 아냐’하더라고요. 하하!”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넘나들며 그야말로 전천후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틈만 나면 뮤지컬, 연극 무대에 서 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연기의 반응이 그때그때 바로 오잖아요. 가수가 콘서트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연극에는 있거든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식당에 가면 종종 제가 출연한 프로그램이 재방, 삼방 되고 있는 걸 보게 되죠. 제가 연기를 하든 말든 종업원은 일하면서, 손님들은 식사를 하면서 흘끔흘끔 TV를 쳐다봅니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연극은 그게 아니잖아요. 다들 시간과 돈을 들여 제 연기를 보러 오신 분들이니 고맙죠. 전 공연이 끝나면 다만 30분이라도 좋으니 관객 분들과 감사의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여보, 고마워’는 많은 사람들이 ‘여보, 미안해’로 오인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박준규도 “연습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여보, 미안해’가 입에 붙어 있었다”라며 웃었다. 한국 남자들은 아무래도 아내에게 ‘고마움’보다는 ‘미안함’이 앞서는 모양이다.
극 중 준수가 아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며 친구와 만취가 되도록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연기가 아주 리얼했다”라고 하자 “원래 술을 잘 먹는다”라고 했다. “주량이 어느 정도냐”고 물으니 “조형기, 신동엽같은 연예계 주당들, 농구선수 문경은, 현주엽 등하고 대작할 정도”란다.
전반부에서 철부지 남편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주는 준수는 후반에 들어서면서 말기 위암 판정을 받고 결국 세상을 뜨게 된다.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어이구”, “불쌍해서 어째”하는 소리와 흐느낌이 섞여 들려온다.
“가족의 소중함, 누구나 겪게 되는 가족과의 이별을 담고 있죠. 저 역시 이 작품을 하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결국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건 가족끼리 서로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이라는 것이지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사진제공|아시아브릿지컨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