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불(火)만 빌린 장인정신

입력 | 2010-08-07 03:00:00


심당길 작품, 불만 빌린 차 그릇 ‘히바카키’(1998년 7월 7일∼8월 10일 동아일보 주최 일민미술관 전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고고하고 형형한 빛과 자태를 유지하는 게 있습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바로 그렇습니다. 고려 비색(翡色)의 독특한 아취와 백자의 다양하고 깊은 흰빛은 세월이 갈수록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감을 더합니다. 그저 묵묵히 바라보고 음미하는 것 이외에 다른 모든 수식을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1000년 전인 10세기 이후에 시작돼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만개하던 도예 문화는 일본에 의해 파란과 질곡의 역사를 맞습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 방방곡곡의 도공이 무차별하게 일본으로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일본의 규슈(九州) 지역에 집중 분산되어 당시 일본 사회가 갈망하던 접시 대접 병 항아리 등의 일상 생활용품과 상류층에서 보물로 취급하던 다완(茶碗)을 다량 생산했고 그것으로 일본인은 식생활과 차 생활에 대혁신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이도다완(井戶茶碗)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일본의 한국계 도예가 심수관(沈壽官)은 1598년 정유재란 때 도공 40명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의 14대 손입니다. 심수관 가문은 400년 동안 일본 땅에서 성씨를 바꾸지 않고 대대손손 도공의 맥을 이어 장인 가문이 되었습니다. 400년이 지난 1990년대 후반, 심수관가(家)는 서울에서 400년 동안 유지해 온 장인 솜씨를 한자리에 모아 ‘심수관가 도예전’을 열었습니다.

그 전시회에 1598년에 일본으로 끌려간 초대 심당길의 차그릇 한 점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작품명이 ‘히바카리’, 우리말로 풀면 ‘불(火)만’이란 뜻입니다. 조선에서 끌려갈 때 가져간 흙과 잿물로 도자기를 만들면서 오직 불만 일본 것을 빌려 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불만 일본 것을 빌려 썼을 뿐 도공을 위시한 나머지 모든 것이 조선에서 왔다는 의미입니다.

도자기는 단순한 그릇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물과 땅의 흙과 자연의 불이 어우러져 빚어낸 우주적 합일이고 또한 승화입니다. 모든 요소를 주관하고 주도하는 섬세한 장인정신은 맑고 깊은 영혼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장인정신의 소유자는 불굴의 정신력으로 자신을 넘어 자연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마침내 우주적 합일의 경지에 다다릅니다.

도예는 우리 조상의 한과 혼이 한데 어우러져 빚어낸 빛나는 유산입니다. 오늘날 그것의 맥을 이어가려는 후손의 노력은 시대적 흐름과 대치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앞서가는 것일 수 있습니다. 기술과 기계, 과학과 문명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인고(忍苦)의 결실이 세상에는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으로서의 한국 도예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를 넘어 미래로 세계로 더 멀리 더 깊게 맥을 이어가야 합니다. 도자기는 그릇이지만 도예는 정신이고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이 빚어낸 한과 혼의 결실, 21세기에 그것이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