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魏(위)나라 제후 앵(앵)이 초청하자 맹자는 위나라 수도 大梁(대량)으로 갔다. 양혜왕의 양은 대량을 뜻하되, 나라 이름을 代喩(대유)했다. 혜왕은 왕을 僭稱(참칭)한 사람에게 죽은 뒤 붙이는 시호라고 한다. 양혜왕은 자신이 초청했던 사람이 모두 富國强兵(부국강병)의 방책을 말했으므로 맹자에게도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들으리라 기대했다. 수는 나이 많은 분을 부르는 2인칭이다. 不遠千里而來는 먼 길 온 분에게 하는 인사말이다. 以는 방도라는 뜻이다.
율곡 이이의 ‘김시습전’에 金守溫(김수온)이 ‘孟子見梁惠王’이라는 논제로 성균관 유생을 시험한 이야기가 나온다. 上舍生(상사생) 하나가 김시습을 찾아가 “이 말이 어찌 논제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라고 했다. 김시습은 껄껄 웃고는 곧바로 글을 지어 주며 “자네가 지었다고 하여 이 노인을 속여 보게”라고 했다. 상사생이 그 말대로 하자 김수온은 다 읽기도 전에 “悅卿(열경·김시습의 字)이 어느 절에 머물고 있나?”라고 했다. 김시습의 글은 ‘양혜왕은 왕을 참칭했으므로 맹자가 만나서는 안 되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김시습이 왕권의 정통성을 중시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