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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 20선]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여행

입력 | 2010-08-11 03:00:00

◇ 바다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는 섬여행/김준 지음/Y브릭로드




《“앞서 가는 승용차 불빛이 블랙홀에 빨려들듯 사라진다. 한 치 앞도 구별하기 힘든 지독한 안개다. 반사적으로 브레이크에 발을 올린다. 고갯길이다. 운전대를 잡은 손에 땀이 흥건하다. 저 멀리 안개 속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깜빡거린다. 와락 반가운 마음에 행여 놓칠까 봐 기를 쓰고 쫓아간다. 어김없이 달아난다. 소록도 가는 길, 시인 한하운이 절망과 싸우며 찾아갔던 그 길에 안개만 자욱하다. 시인은 썩어가는 발가락의 고통보다 더 깊은 절망과 싸우며 이 길을 걸었을 것이다.”》


전라남도의 33개 보물섬 지도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에 속한 섬 소록도. 국립소록도병원은 1910년 외국인 선교사들이 소록도에서 운영하던 ‘시립나요양원’에 나병 환자들을 수용하면서 설립됐다. 1960년부터는 환자 수용 위주에서 치료 위주로 정책이 변화했다. 이후 이름이 ‘소록도갱생원’ ‘국립나병원’ 등으로 바뀌었다. 섬 주민들은 마늘농사와 돼지 사육으로 소득을 올린다. 어린 사슴 모양을 가진 소록도 1번지에는 아름다운 솔숲과 유채꽃밭 등이 어우러진 소록도해수욕장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전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인 저자는 ‘다도해 사람들’ ‘섬과 바다’ 등 바다에 관한 책을 여러 권 냈다. 그는 연구원에서 섬과 바다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수년간 둘러본 전남의 독특한 역사와 빼어난 풍경을 가진 ‘보물섬’ 33곳을 소개한다.

나로우주센터로 널리 알려진 고흥군 외나로도는 수심이 깊어 큰 배들도 포구까지 곧장 들어오는 천혜의 포구 축정항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서해 어장에서 잡힌 고기를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만든 포구였다. 일제는 이곳에 도로를 포장하고 얼음공장, 상수도 시설, 자가 발전 시설을 세웠다. 당시 일본인 500여 명이 거주했고 선창에는 일본식 가옥이 즐비했다. 축정항에 들어오던 고기 중 으뜸은 참치였다. 나로도 어장은 수심이 깊고 물이 깨끗해 참치 맛이 좋고 비린내가 적었다. 이 섬 학생들은 ‘교복 단추를 금으로 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돈이 몰렸다.

신안군 비금도는 수십 차례의 간척을 통해 1000여 개의 섬을 합쳐 만들어졌다. 갯벌을 막아 만든 땅에서 벼농사, 소금농사를 지었다. 이곳에서는 광복 뒤 한국인이 최초로 천일염전을 조성해 소금을 생산했다. 평양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돌아온 박삼만, 손봉훈 씨가 이곳에서 천일염 생산에 성공했다. 당시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천일염전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48년경에는 450가구의 주민들이 염전조합을 결성했다. 소금 값이 오르자 염전 인부들까지 지갑의 실밥이 터질 정도로 돈을 벌었다. 사람들은 비금도의 한자를 ‘飛禽’에서 돈이 날아다닌다는 뜻의 ‘飛金’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동해에 명태가 있다면 서해에는 조기가 있다. 조기는 겨우살이를 끝내고 산란을 위해 무리 지어 서해로 북상하는데, 예전에는 전남 영광군 칠산도 앞바다에 정착했다. 이곳이 충남 녹도어장, 경기 연평어장과 더불어 대표적인 조기 어장이 된 이유다. 이곳에서 잡힌 조기를 인근 법성포에 들여와 갈무리를 해 영광굴비가 됐다. 영광굴비는 소금 간이 아닌 갯벌 천일염을 이용한 간수로 맛을 내 명성을 얻었다.

수백 년 된 거대한 노송 숲이 장관인 장산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섬으로 지정된 증도, 갈치젓 명산지 소리도, 장보고의 전설이 전해지는 장도 등도 저자가 소개하는 둘러볼 만한 섬들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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