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머니도 일본의 경우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쓰라고 한다면 아마 ‘명문대학에 입학하기를’을 쓰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해보았다. 이런 과열된 대입경쟁은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서 해마다 많은 한인 학생이 아이비리그 등 일류대학에 입학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심해서 부모의 등에 떠밀려 명문대 입학 후 학업동기를 잃고 중도 탈락하거나 졸업은 했지만 방향성을 잃고 더는 성취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오해는 하지 말자. 미국인이 아이의 학업 성취에 관심이 없거나 한국인이 자녀의 행복을 등한시하기 때문은 절대 아니다. 필자는 미국 부모가 아이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말할 수 있는 여유(?)를 보이는 한 가지 중요한 이유를 재도전이 허용되는 교육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서 찾고 싶다.
내 친구는 늦은 나이에 부모님의 큰 도움 없이 커뮤니티 칼리지에서부터 시작해 주립대의 학부를 거쳐 명문 대학원까지 성공적으로 마치고 현재 의사로 일한다. 다른 지인은 고등학교 시절의 방황 때문에 대학 진학을 유보한 채 군대와 직장생활을 먼저 경험했는데, 그 후 결혼해 아이를 가진 상황에서 대학에 진학해 만족스럽게 공부해 왔으며 현재 졸업을 앞두고 있다. 두 사람의 성공적인 재도전 사례 뒤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미 연방정부의 학자금 융자제도와 재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가 있었음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재도전이 가능한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라면 중고등학교 교육에 반드시 올인할 필요가 없다. 또 좋은 학교를 졸업하는 일보다는 졸업 후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가치를 향상시키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중고교생 시절 이후 뒤늦게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계발한 늦깎이(late bloomer)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다.
이런 늦깎이는 창의성 통찰력 그리고 리더십처럼 성장기 이후에도 계속 완성되어 가는 복잡한 능력에서 돋보이는 경우가 많아 결국 사회 각 부분의 발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능력을 활용할 유연한 교육시스템을 갖고 있다면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윈윈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정훈 미국 토머스제퍼슨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