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서 동생 안낳는거야?” 엄마 눈이 빨개진다… 괜히 말했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일주일에 5번은 어린이집에서 하루 12시간을 보내는 수빈이. 다니고 있는 솔로몬 어린이집에서 손가락을 물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수빈이는 취재 기자에게 “기자 선생님도 아기가 있어요? 선생님 아기가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엄마는 식당일에 대해 ‘집도 주고 밥도 주는 고마운 일’이라고 했지만, 출근하는 엄마 모습을 보면 일하기 싫은 것 같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아침 간식시간. 먼저 우유를 마시던 친구들이 “수빈이는 혈액형이 뭐야”라고 묻는다. 우유를 마시며 혈액형 맞히기 놀이를 하다 보니 엄마 생각이 덜 난다. 엄마를 다시 만나려면 12시간이 남았다.
회사에 다니던 엄마는 나를 임신했을 때 회사를 관뒀다. 그리고 내가 두 돌이 지날 때까지는 집에 계셨다고 한다. 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모네 집에서 지낸 적도 있다. 엄마는 두 달 만에 나를 어린이집에 보냈다. 이모가 아이 넷을 돌보느라 끙끙대는 게 안쓰러웠다고 했다. 게다가 이모부라도 집에 일찍 오시면 나는 마음껏(?) 울 수도 없었다.
어린이집은 친구들과 마음껏 놀 수 있어 좋다. 어린이집에 안 오는 날에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보고 싶다.
어린이집에 가기 싫었던 적이 딱 한 번 있긴 했다. 새로 오신 선생님이 시끄럽다며 소리를 질렀을 때다. 깜짝 놀라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 후 10분에 한 번씩 화장실에 갔다. 일주일 동안 그랬다. 엄마는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갔다. 의사선생님은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엄마와 함께 원장선생님과 상담을 받았고, 다행히 어린이집 가는 게 다시 즐거워졌다.
이럴 땐 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부럽다.
“엄마, 나도 동생 있으면 안 돼?” 언젠가 엄마한테 동생을 낳아 달라고 졸라 보았다. “휴∼” 하는 한숨 소리가 돌아왔다.
“응.”
“엄마는 수빈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니까 공부를 많이 시켜주고 싶어. 엄마는 수빈이 하나만 잘 키울 생각이야.”
요즘 엄마 걱정이 커졌다. 내가 내년에 학교에 가면 돈이 많이 들 거라고. 하긴 엄마는 가끔 갓난아기인 나를 어떻게 키웠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분유, 기저귀 사느라 지갑이 빌까봐 늘 조마조마했단다.
“엄마, 돈이 없어서 그래? 동생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들어?”
“아니야, 수빈아. 우리 돈 있어.” 엄마 눈이 빨개진다. 동생 낳아 달라는 말을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수빈이 엄마가 둘째 아이 낳기를 포기할 만큼 양육비와 교육비 부담은 과도하다. 김승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녀를 낳은 뒤 대학 졸업 때까지 키우고 교육시키려면 2009년 기준으로 1인당 평균 약 2억6204만 원의 비용이 든다. 자녀 양육비용은 영아(0∼2세)는 2466만 원, 유아(3∼5세)는 2938만 원, 초등학생(6∼11세)은 6300만 원이다. 여기에 여성이 출산 육아에 따라 일자리를 포기하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까지 더하면 자녀 양육비용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선생님하고 구몬 학습지를 푼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늘어나고 선생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엄마는 밤 10시나 돼야 일이 끝난다. 나를 데리러 오는 시간은 10시 20분쯤. 엄마가 식당을 어린이집 근처로 옮겨서 그나마 빨라졌다. 이전에는 11시가 다 돼서야 왔다.
아빠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 운전을 하는 아빠는 새벽 5시 40분에 나간다. 집에는 보통 밤 12시가 돼야 온다. 새벽 한두 시에 올 때도 많다. 내가 잠자는 사이 집에 왔다가 다시 나가시는 셈이다.
가끔 낮에 통화는 한다. “아빠 몇 시에 와, 늦어?” 하고 물으면 아빠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 이럴 때 “아빠 사랑해”라고 하면 아빠는 다시 쾌활해진다. 아빠가 자전거를 밀어주시면 얼마나 신나는지 모른다. “우리 수빈이 잘한다”고 박수를 쳐 주시면 어깨가 으쓱 올라간다. 그래서 아빠가 토요일에 하루 종일 주무실 때는 서운하다.
2008년 한국 근로자의 연간 근로시간은 2256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3배로 30개 회원국 중 가장 길다. 일과 가정을 다 챙기기가 쉽지 않다. 힘든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대면하는 시간이 하루 한두 시간에 불과한 아이들이 행복할 리 없다.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의 ‘돌봄 공백’은 심각하다. 엄마나 아빠가 한 명만 있는 한부모가정, 조손(祖孫)가정, 맞벌이가정이 늘어나면서 홀로 남겨지는 아동이 100만 명을 넘어선다는 통계도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15명. OECD는 한국이 2020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은 출산과 양육에 따른 경제적·비경제적 비용이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커졌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44세 기혼여성의 출산 중단 사유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명확하다. 자녀양육·교육부담이 35.1%로 첫 번째로 꼽혔다. 가치관 변화(24.6%), 소득·고용불안정(19.3%), 일·가정 양립 곤란(15.8%) 순이었다.
청년실업은 미혼과 만혼으로 이어졌다. 취업 여성은 결혼하더라도 보육의 어려움 때문에 출산을 기피한다. 자녀 양육비·교육비가 높다 보니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다.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당위만 되뇌어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힘든 구조다. 이 실타래를 어떻게 풀 것인지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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