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이던 조윤지(오른쪽)가 방학 때 미국 플로리다로 가 유학 중이던 언니 조윤희(왼쪽) 앞에서 골프채를 잡았다. 사진 제공 조혜정 감독
엄마 역시 164cm의 작은 키였지만 배구코트에서 펄펄 날았다. ‘나는 작은 새’라는 별명을 가진 조혜정 프로배구 GS칼텍스 감독(57)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동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고 올해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이 됐다.
엄마 아빠의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두 딸은 프로골퍼가 됐다. 한국 골프 역사상 최초의 자매 프로골퍼인 조윤희(28·토마토저축은행)-조윤지(19·한솔)가 그 주인공이다.
피는 못속여-수영 테니스 스케이트… 뭘해도 척척
○ 남달랐던 운동소질
부부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운동선수로 키울 작정이었다. 조 감독은 “운동선수로서 너무 행복했기에 아이들도 소질만 있다면 운동을 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두 딸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 조 감독은 “기기 시작할 때부터 워낙 씩씩하게 배를 밀고 다녀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였다”고 했다. 어릴 적 수영, 스케이트, 테니스 등 어떤 운동을 시켜도 척척 해냈다. 해당 종목의 코치들로부터 매번 “운동 한 번 시켜볼 생각 없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눈빛만 봐도-운동으로 소통… 식탐도 모두 프로급
○ 이 가족이 사는 법
운동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가족이 모이면 항상 유쾌한 대화가 오간다. 윤희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단합이 잘되는 가족일 것이다. 운동뿐 아니라 사생활의 세세한 것까지 다 털어 놓는다”고 했다. 조 감독은 “운동선수들이다 보니 모두 먹는 것을 즐긴다. 매일 뭘 먹을까가 고민이라면 고민”이라고 말했다.
운동이라는 매개체 덕분에 눈빛만 봐도 서로의 감정을 안다. 때문에 조창수-조혜정 부부는 여느 골프맘이나 골프대디처럼 절대 운동을 강요하지 않는다. 두 자매가 “너무 힘들다. 때려치우고 싶다”고 말할 때면 이들은 “네 생각이 그렇다면 편히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러면 며칠 뒤면 두 딸은 어김없이 다시 골프채를 잡는다고. 조윤지는 “일정한 선만 지키면 무척 자유롭다. 특히 풀어줄 땐 확실하게 풀어주신다”며 웃었다.
○ “가장 어려운 것은 골프”
이들에게도 아픔이 없었을 리 없다. 윤희는 프로 데뷔 이듬해인 2003년경 극심한 부진으로 은퇴까지 생각했다. 윤지 역시 드림투어에서 뛰던 지난해 초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지 않는다”며 눈물을 쏟았다.
조창수 씨는 “아내나 나는 단체운동을 했다. 내가 좀 못 해도 다른 선수들의 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골프는 모든 걸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스포츠라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조 감독도 “애들이 긴 슬럼프에 빠졌을 때 내색은 안 했지만 나도 무척 힘들었다. 딸들을 통해 골프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운동이라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윤지는 “올 초 호주 전지훈련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내 몸이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열심히 했다. 골프장갑을 벗는 게 불안할 정도였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 퍼터를 잡은 적도 있다”고 했다.
○ 선의의 경쟁은 계속된다.
투어생활 9년째인 언니는 아직 우승이 없다. 혹시 섭섭하진 않았을까. 윤희는 “내가 지금 우승한다고 쳐도 이미 늦은 나이 아니냐. 어차피 할 거면 동생이 빨리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실제로 윤지는 언니로부터 코스 읽는 법부터 선후배 관계에 이르기까지 큰 도움을 받는다. 어릴 적부터 동생의 스윙을 봐 왔던 터라 스윙이 조금만 달라져도 ‘원 포인트 레슨’으로 교정해 준다. 나이 차도 제법 나 언니라기보다는 엄마 같다.
이 가족은 요즘 ‘순위 놀이’를 즐긴다. 올해 GS칼텍스 감독이 된 조 감독이 고정 수입이 생겼다는 이유로 갑자기 1위에 올랐다. 그랬다가 최근 우승한 윤지가 선두가 됐다. 윤희는 “언젠간 나도 우승해서 1위에 오를 날이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들의 선의의 경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